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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엘파바를 악당으로 만들었을까? 영화 <위키드>가 뒤집어버린 선과 악의 이야기

mynote45009 2026. 9. 4. 18:49

목차


     

    초록색 피부를 가진 소녀가 태어났다.

     

    사람들은 아이를 보자마자 놀랐다.

     

    누군가는 이상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불길하다고 했다.

     

    아이가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하나의 이미지가 따라붙었다.

     

    ‘저 아이는 우리와 다르다.’

     

    이 한마디가 이상하게 무섭다.

     

    사람은 낯선 존재를 오래 바라보지 않는다.

     

    이름을 붙이고, 이유를 만들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이야기를 사실처럼 받아들인다.

     

    누군가가 나쁜 사람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나면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묻는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위키드>의 엘파바가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던 서쪽의 사악한 마녀.

     

    초록색 피부, 검은 모자, 빗자루.

     

    어린 시절부터 너무 익숙하게 보아온 이미지라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는 그 악당에게 이름을 돌려준다.

     

    엘파바.

     

    친구가 있었고, 상처가 있었고, 사랑받고 싶었던 시간이 있었던 한 사람의 이름이다.

     

    영화는 엘파바를 처음부터 악인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초록색 피부 때문에 배척받고, 자신의 힘과 신념 때문에 점점 주변과 멀어지는 인물로 그린다. 글린다와의 만남 역시 이 변화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고 나니 질문 하나가 남았다.

     

    사람들은 왜 진실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악당을 만들어내는 걸까.

     

    <위키드>가 흥미로운 이유는 악당의 과거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누군가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초록색 피부를 가진 아이는 왜 처음부터 의심받았을까

     

    엘파바가 잘못한 것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녀를 불편해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남들과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성격과 행동에 대한 판단으로 이어진다.

     

    엘파바가 화를 내면 성격이 까다로운 사람이 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고집 센 사람이 된다.

     

    권력에 순응하지 않으면 위험한 인물이 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된다.

     

    사람을 판단하는 방식이 참 편리하다.

     

    한번 붙여놓은 이름에 맞춰 그 사람의 행동을 해석하면 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이 부분이 생각보다 불편했다.

     

    엘파바가 사람들 앞에서 시선을 받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화면보다 객석 쪽 반응이 궁금해졌다. 누군가 웃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에는 ‘저 상황에서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영화 속 인물들이 엘파바를 바라보는 시선이 스크린 밖의 관객에게도 그대로 옮겨오는 느낌이었다.

     

    그 장면을 지나고 나니 초록색 피부라는 설정이 단순한 판타지적 특징으로 보이지 않았다.

     

    영화에서 더 섬뜩한 부분은 엘파바가 어느 날 갑자기 악당으로 선언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작은 편견이 먼저 생긴다.

     

    그다음 소문이 따라온다.

     

    그리고 권력이 그 이야기를 이용한다.

     

    오즈의 사람들에게는 복잡한 진실보다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우리 편과 위험한 사람.

     

    영웅과 악당.

     

    이렇게 나누면 세상은 훨씬 단순해진다.

     

    오즈의 마법사가 가진 힘도 여기에 있다.

     

    그가 단순히 강력한 마법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엘파바가 권력에 순응하지 않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녀가 마법사의 뜻을 의심하면 반역자가 되고, 동물들이 차별받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면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된다.

     

    특히 영화 속 동물들의 위치가 달라지는 과정은 중요한 단서다.

     

    말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었던 동물들이 점점 공적인 자리에서 밀려난다. 엘파바가 그 부당함에 반응하면서 그녀는 권력과 충돌하기 시작한다. 평론에서도 이 동물 억압과 엘파바의 저항을 영화가 권력과 공포의 문제로 연결한다고 분석한다.

     

    결국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보다 ‘사악한 마녀’라는 이름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

     

    이 설정은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우리도 비슷한 일을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으면 그 사람의 행동을 직접 확인하기 전에 이미 결론을 내릴 때가 있다.

     

    한번 ‘문제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으면 그 사람이 하는 말도 다르게 들린다.

     

    같은 행동인데도 누구의 행동인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위키드>는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린다.

     

    악당은 원래부터 악당이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름이 반복될수록 당사자의 진짜 모습은 점점 뒤로 밀려난다.

     

    글린다는 왜 사랑받고, 엘파바는 미움받았을까

     

    그래서 오히려 글린다가 중요해진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너무 다르다.

     

    엘파바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며 살아왔고, 글린다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살아왔다.

     

    글린다는 예쁜 옷을 좋아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즐긴다.

     

    어떤 말을 해야 분위기가 좋아지는지도 알고 있다.

     

    그녀에게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법이 자연스럽다.

     

    ‘Popular’를 부르는 장면이 재미있는 것도 그래서다.

     

    글린다는 엘파바에게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방법을 알려준다.

     

    옷을 바꾸고, 말투를 바꾸고, 조금 더 웃고, 조금 더 꾸미면 된다고 말한다.

     

    귀엽고 유쾌한 장면이다.

     

    그런데 웃으면서 보고 있던 나 자신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글린다가 옷을 골라주고 머리를 만져주는 동안에는 객석에서도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장면이 끝난 뒤에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면 이렇게까지 나를 바꿔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재미있는 장면 하나가 지나갔는데 그 안에 꽤 씁쓸한 말이 들어 있었던 셈이다.

     

    글린다는 정말 엘파바를 도와주고 있다.

     

    그녀의 방식으로는 진심이다.

     

    하지만 그 방법은 결국 이런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사람들이 너를 싫어하지 않게 하려면 네가 조금 달라져야 해.’

     

    이 지점에서 글린다를 단순한 악역으로 만들면 영화의 재미가 오히려 줄어든다.

     

    그녀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엘파바에게 마음을 열고, 두 사람의 우정을 진심으로 소중하게 여긴다.

     

    다만 글린다는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힘을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실제 평론에서도 글린다는 단순히 ‘착한 마녀’라기보다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강한 인물로 분석된다. 엘파바와의 우정이 이 영화의 정서적 중심이 되는 이유도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자신과 다른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엘파바 역시 완벽하지 않다.

     

    화를 내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둘 다 사람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차이를 선과 악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 선택의 차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의 이름을 갈라놓는다.

     

    한쪽에는 ‘Good’이라는 이름이 붙고, 다른 한쪽에는 ‘Wicked’라는 이름이 붙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두 단어가 정말 두 사람의 본질을 설명하는 것일까.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글린다에게는 허영심이 있고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있다.

     

    엘파바에게는 분노도 있고 고집도 있다.

     

    둘 다 흔들린다.

     

    둘 다 실수한다.

     

    그래서 두 사람의 우정이 더 중요하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처음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위키드>에서 가장 따뜻한 장면들은 오히려 이런 순간에 나온다.

     

    화려한 무대도 아니고 거대한 마법도 아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표정.

     

    처음에는 서로를 싫어했던 두 사람이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

     

    평론에서도 두 사람의 우정이 이야기의 정서적 기반이라고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영화가 말하는 ‘착한 사람’은 무엇일까.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일까.

     

    아니면 사랑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옳다고 믿는 선택을 하는 사람일까.

     

    ‘Defying Gravity’에서 엘파바는 정말 악당이 되었을까

     

    <위키드>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역시 ‘Defying Gravity’다.

     

    엘파바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음악은 점점 커지고 화면은 거대한 오즈의 공간을 가득 채운다.

     

    초록색 피부와 검은 의상, 빗자루.

     

    강렬한 이미지다.

     

    그런데 이 장면을 단순히 ‘멋있는 뮤지컬 장면’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았다.

     

    엘파바는 그 순간 무엇을 선택했을까.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길을 포기했다.

     

    자신을 받아들여줄 것처럼 보였던 권력의 손도 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쪽으로 날아간다.

     

    그 대가가 바로 ‘Wicked’라는 이름이었다.

     

    극장에서 이 장면이 시작됐을 때는 음악과 화면에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그런데 엘파바가 점점 높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이렇게 멋있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이 영화 속 세계에서는 한 사람을 ‘사악한 마녀’로 규정하는 출발점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환호하고 싶은 장면인데 동시에 씁쓸했다.

     

    이 장면에서 무서운 것은 엘파바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보다 그녀가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로 바뀌는가에 있다.

     

    조금 전까지 한 사람이었던 엘파바가 어느 순간 ‘위험한 마녀’가 된다.

     

    사람들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왜 마법사를 거부했는지, 왜 동물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지,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이미 결론이 나 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악당이다.’

     

    이런 악당은 상대하기 편하다.

     

    말을 들을 필요가 없고, 사정을 이해할 필요도 없다.

     

    악당이라는 결론을 먼저 내려놓으면 이후의 행동은 모두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된다.

     

    그래서 <위키드>에서 가장 무서운 마법은 엘파바의 마법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믿게 된 이야기다.

     

    한번 굳어진 이야기는 진실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영화 속 권력은 공포와 선전을 이용해 엘파바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특히 엘파바가 권력에 맞서면서 그녀에게 ‘Wicked’라는 이름이 붙는 과정은 개인의 악행보다 권력이 만들어낸 서사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는 엘파바보다 우리 쪽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누군가를 얼마나 쉽게 판단하고 있을까.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사람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본 적도 없이 믿고 있지는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 질문이 불편한 이유는 답이 너무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학교에서 한 사람의 평판을 들었을 때,

     

    인터넷에서 어떤 사람에 대한 논란을 접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자주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결론부터 내리고 있을까.

     

    <위키드>는 그 순간을 거대한 마법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익숙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사람.

     

    자신의 생각을 지키고 싶은 사람.

     

    권력을 이용해 질서를 유지하려는 사람.

     

    그리고 그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누군가는 영웅이 되고 누군가는 악당이 된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초록색 얼굴이 계속 생각났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무서운 마녀라고 생각했던 얼굴이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어쩌면 엘파바에게 가장 잔인했던 것은 초록색 피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그녀를 이해하려 하지 않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그 일이 오즈에서만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이상하다는 이름을 붙이고,

     

    한 사람의 행동을 몇 개의 장면으로 판단하고,

     

    사람들이 많이 믿는 이야기를 진실처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만들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위키드>를 보고 난 뒤에는 ‘엘파바가 정말 악당이었을까?’라는 질문보다 다른 질문이 더 오래 남았다.

     

    나는 지금 누구를 너무 쉽게 악당으로 만들고 있는가.

     

    아마 이 질문이야말로 <위키드>가 오래된 오즈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든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선과 악의 경계는 생각보다 분명하지 않다.

     

    때로는 누가 선한 사람인지보다,

     

    누가 그렇게 불리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4knuyowIG-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