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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은 혼자 뉴욕을 날아간다.
겨울이다.
빌딩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고,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바쁘게 움직인다. 그 위를 스파이더맨 한 명이 거미줄을 쏘며 건물 사이를 지나간다.
그런데 이상하다.
저렇게 자유롭게 움직이는 사람이 왜 이렇게 외로워 보일까.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이 생각이 먼저 든다.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한 화면에 등장했던 순간도 짜릿했다. 과거의 빌런들이 다시 나타나는 장면도 반가웠다. 개봉 당시 극장에서 토비 맥과이어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객석에서 탄성이 터졌던 기억도 선명하다. 나 역시 그 순간 피식 웃었다. 어린 시절 보았던 스파이더맨이 시간이 훌쩍 지난 뒤 다시 내 앞에 나타난 느낌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에는 전혀 다른 장면이 머릿속에 남았다.
아무도 없는 뉴욕을 혼자 날아가는 피터.
피터 파커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지 못했다.
MJ도 살아 있고, 네드도 살아 있다. 해피도 살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피터 파커라는 사람에 대한 기억은 사라졌다.
사람들은 스파이더맨을 기억하지만 그 영웅의 가면 뒤에 피터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자신이 없었던 사람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
그런데도 피터는 다시 마스크를 쓴다.
여기서 영화가 남긴 질문이 선명해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 행복까지 포기할 수 있을까.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영화는 아니다.
초반에는 미스테리오가 공개한 피터의 정체 때문에 벌어지는 소동이 이어진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주문이 꼬이면서 다른 우주의 빌런들이 나타나고, 관객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세 명의 스파이더맨까지 한자리에 모인다.
화려하다.
재미있다.
팬이라면 반가울 수밖에 없는 장면도 많다.
하지만 모든 사건이 지나가고 나면 결국 한 사람의 선택만 남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는 대신, 그 사람의 삶에서 자신을 지우는 선택.
그 선택이 이 영화의 마지막을 그렇게 아프게 만든다.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만난 뒤, 피터는 혼자가 아니었다
개봉 당시 가장 뜨거웠던 이야기는 역시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었다.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루 가필드가 정말 등장하는지에 대한 추측이 끊이지 않았고, 과거의 빌런들이 돌아온다는 소식도 큰 화제가 됐다.
토비 맥과이어의 피터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극장 분위기가 한순간에 달라졌다.
그때는 영화 내용을 따라가던 것보다 객석의 반응을 듣는 재미가 더 컸던 것 같다. 여기저기서 웃음과 탄성이 동시에 터졌고, 나도 모르게 옆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앤드루 가필드가 등장했을 때도 분위기는 다시 한번 달아올랐다.
그런데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고 나니 의외로 재미있는 부분이 보였다.
누가 더 강한지 경쟁하지 않는다.
누가 진짜 스파이더맨인지 따지지도 않는다.
서로의 상처를 너무 쉽게 알아본다.
토비 맥과이어의 피터에게는 오랫동안 영웅으로 살아온 사람의 차분함이 있다.
앤드루 가필드의 피터는 밝게 웃고 농담도 하지만 그웬을 잃은 기억을 품고 있다.
톰 홀랜드의 피터는 아직 가장 어린 사람이다.
자신이 한 선택의 결과를 이제 막 감당하기 시작한 단계다.
세 사람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삶을 살지는 않았다.
그래서 서로에게 특별한 위로가 될 수 있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어.”
굳이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다.
특히 앤드루의 피터가 MJ를 구하는 장면에서는 이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MJ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자 앤드루의 피터가 몸을 던진다.
그웬을 구하지 못했던 사람이다.
이번에는 손을 뻗는다.
그리고 MJ를 안전하게 받아낸다.
그 순간 앤드루의 피터 얼굴에는 여러 감정이 동시에 스친다.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기억.
이번에는 지켜냈다는 안도감.
그리고 조금은 늦게 찾아온 구원.
이 장면에서는 나도 잠깐 숨을 멈췄다. 이미 어떻게 될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도, 앤드루의 표정을 보는 순간 괜히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웬을 구하지 못했던 장면이 머릿속에 겹쳐졌기 때문이다.
이 장면이 좋은 이유는 단순히 과거 캐릭터가 돌아왔기 때문이 아니다.
한 사람의 실패가 다른 세계의 피터를 통해 조금 다른 결말을 맞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관객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선물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각자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고, 서로의 경험을 건네면서 가장 어린 피터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토비의 피터는 이미 지나온 시간을 알고 있다.
앤드루의 피터는 잃어버린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
톰의 피터는 이제 그 길을 지나가야 한다.
그래서 세 사람의 만남은 일종의 인생 선배와 후배가 만나는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먼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아직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에게 자신들이 배운 것을 건네는 것이다.
그리고 톰 홀랜드의 피터는 그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배운다.
영웅이 된다는 것은 능력을 갖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 가져올 결과까지 감당하는 일이라는 것.
메이를 잃은 순간, 피터는 영웅의 대가를 알게 됐다
영화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은 사람은 메이 숙모였다.
메이는 피터가 어떤 일을 벌이든 걱정했고, 그가 옳은 일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녀가 피터에게 가르친 것은 단순한 선행이 아니었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외면하지 않는 것.
설령 그 선택 때문에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메이의 죽음은 단순한 캐릭터의 퇴장이 아니다.
피터가 그동안 믿어왔던 가치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직접 경험하는 순간이다.
메이는 마지막에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남긴다.
그동안 피터에게 책임은 어쩌면 멋있는 말에 가까웠다.
위험한 사람을 막고, 사람들을 구하고, 스파이더맨으로 살아가는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
메이를 잃고 나서는 달라진다.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때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린 고블린을 향해 달려가는 피터의 얼굴을 보면 그 변화가 느껴진다.
분노가 너무 크다.
지금 당장 노먼 오스본을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 순간 토비 맥과이어의 피터가 앞을 막아선다.
그 역시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 길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말보다 먼저 피터를 붙잡는다.
이 장면에서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왜 함께 있어야 했는지가 다시 드러난다.
토비의 피터는 이미 복수와 분노의 시간을 지나왔다.
앤드루의 피터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얼마나 깊이 무너질 수 있는지 알고 있다.
톰의 피터는 지금 그 두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설정 자체보다, 먼저 살아본 두 사람이 가장 어린 피터에게 자신들의 경험을 건네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해 보인다.
실제로 영화에 대한 평론에서도 이 세 명의 만남은 단순한 향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됐다. 과거의 두 피터가 톰 홀랜드의 피터가 감당해야 할 상실과 책임을 이해하도록 돕는 구조가 영화의 감정적 완성도를 높인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메이의 죽음 이후 피터가 내리는 마지막 선택이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그는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방법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MJ를 사랑하기 때문에, 피터는 자신의 존재를 지운다
마지막 주문이 시작되는 순간 영화는 피터에게 잔인한 선택을 내민다.
세상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려면 모든 사람이 피터 파커를 잊어야 한다.
MJ도. 네드도. 해피도.
피터와 가까웠던 사람들의 기억에서 피터 파커라는 사람이 사라진다.
그게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부분이다.
죽음보다 더 이상한 이별이다.
사람은 살아 있는데 나를 모른다.
함께했던 시간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데 상대방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나는 낯선 사람이 된다.
그런데 피터는 그 선택을 받아들인다.
원래 피터는 주문이 끝난 뒤 MJ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MJ를 직접 찾아간 뒤, 그녀와 네드가 자신 없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영화의 결말은 피터가 자신의 행복보다 그들의 안전과 평범한 삶을 선택하는 쪽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에 MJ를 찾아간 장면이 그래서 오래 남는다.
피터는 말할 수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줄 수도 있었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다시 가까워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피터는 멈춘다.
MJ는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네드도 곁에 있다.
두 사람은 피터가 없는 세상에서도 자신의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이다.
피터는 그 모습을 확인한 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장면을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는 ‘제발 말하지 마’라는 생각과 ‘그래도 말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피터 입장에서는 한마디만 하면 모든 것을 되돌릴 수도 있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철렁했다.
이 장면에는 악당도 없다.
싸움도 없다.
도시를 구하는 거대한 액션도 없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 선택이 오히려 스파이더맨의 가장 어려운 싸움처럼 느껴졌다.
피터는 MJ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조금 복잡한 마음도 들어 있다.
과연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그 사람의 기억을 없애버리는 선택이 정말 옳은 것일까.
피터가 짊어진 책임은 분명 크지만, 그의 선택이 완전히 편안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결말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내가 내린 선택이 언제나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문제를 깊게 파고들지는 않는다. 일부 평론에서는 오히려 기억 삭제라는 설정이 당사자의 동의와 자율성이라는 윤리적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럼에도 피터가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만큼은 선명하다.
그는 행복을 얻지 못했다.
적어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방식의 행복은 아니다.
MJ와 함께 있을 수도 없고, 네드와 예전처럼 농담을 주고받을 수도 없다.
해피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할 수도 없다.
아이언맨의 도움도 없다.
어벤져스라는 이름 뒤에 기대기도 어렵다.
남은 것은 자신의 손으로 만든 새 슈트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삶이다.
그리고 이 부분이 중요하다.
피터는 모든 것을 잃은 뒤에도 다시 스파이더맨이 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다시 마스크를 쓰는 사람
마지막 장면의 피터는 영화 초반의 피터와 완전히 다르다.
처음의 피터는 자신의 삶을 되돌리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대학에 가고 싶었다.
MJ와 네드와 평범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 마음은 너무 당연하다.
영화 초반 피터가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도 결국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정상으로 돌려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의 피터는 자신이 원하는 것만으로 세상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다시 스파이더맨이 된다.
아이언맨이 만들어준 슈트도 없다.
어벤져스라는 이름도 없다.
MJ와 네드도 없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향한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처음에 봤던 뉴욕의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혼자 날아간다.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않는다.
아무도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그는 다시 거미줄을 쏜다.
마지막 뉴욕 장면에서는 오히려 액션보다 피터의 혼자 있는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다. 건물 사이를 빠르게 날아가는데도 이상하게 조용하게 느껴졌다.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함께 있었던 직전 장면과 비교하니 그 외로움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 순간 피터는 비로소 스파이더맨이 된 것처럼 보인다.
영웅이란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선택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단순한 ‘희생의 아름다움’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다.
피터의 선택은 멋있지만 동시에 잔인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정이 정말 최선이었는지도 쉽게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마지막 피터가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그는 모든 것을 초월한 영웅이 아니다.
외롭고, 슬프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달려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평범한 청년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선택한다.
어쩌면 스파이더맨의 성장이라는 것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힘이 세지는 것.
더 강한 적을 물리치는 것.
새로운 슈트를 얻는 것.
그런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을 포기하면서도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을 계속하는 것.
그리고 아무도 그 이유를 알아주지 않을 때도 그 선택을 이어가는 것.
물론 현실에서 그런 선택을 쉽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 역시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너무 자연스럽다.
함께 웃고 싶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고, 내가 그 사람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다.
그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상대의 행복을 선택한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그래서 피터의 마지막 선택이 더 오래 기억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 행복까지 포기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이 질문에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질문이 하나 더 생겼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의 삶을 대신 결정해도 되는 걸까.
피터의 선택은 분명 이타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외로운 선택이다.
그래서 더 마음에 남는다.
사랑은 언제나 곁에 머무는 것일까.
아니면 때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삶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것도 사랑일까.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그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한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돌아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마스크를 쓴다.
혼자가 된 채 뉴욕으로 날아간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먹먹해진다.
어쩌면 피터가 마지막에 포기한 것은 MJ와의 사랑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만을 위한 행복을 먼저 선택할 권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스파이더맨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이 기억하지 못해도,
내가 선택한 책임을 계속 감당하는 것.
그게 이 영화가 피터에게 남긴 가장 무거운 숙제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숙제를 안고 다시 뉴욕을 날아가는 피터의 모습이,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함께 싸웠던 어떤 장면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