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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슈퍼맨> 후기 (희망, 매력, 감각)

flowerpiggy 2026. 5. 25. 12:23

목차


     

    극장에서 나오면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간 뒤에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객석의 불이 켜진 후에도 쉽게 현실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분명 슈퍼히어로 영화를 보고 나온 건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묵직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수많은 히어로 영화를 봐왔지만, 영화가 끝난 뒤 이런 감정이 남았던 적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보통은 액션 장면이나 쿠키 영상 이야기를 하며 극장을 나서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영화가 던진 질문과 감정들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습니다.

     

    제임스 건 감독의 슈퍼맨은 오랫동안 어둡고 무거운 방향으로만 달려오던 DC 영화가 마침내 원점으로 돌아온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단순히 밝아졌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슈퍼맨이라는 캐릭터가 처음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이유, 그리고 왜 지금까지도 슈퍼히어로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지를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129분 동안 단 한순간도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봤다"는 감각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 슈퍼맨이 다시 '희망'이 된 이유, 인간성이라는 초능력

     

    솔직히 말하면 기대치는 높지 않았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히어로 영화들이 보여준 방향성에 적잖이 지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멀티버스는 점점 복잡해졌고, 세계관은 끝없이 확장됐으며, 관객은 이전 작품들을 모두 숙지해야만 다음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거대한 도시가 무너지고, 우주적 존재들이 싸우고, 수십 명의 히어로가 등장하는데도 이상하게 감정은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슈퍼맨 역시 비슷한 길을 걷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걱정은 사라졌습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이번 영화의 핵심은 슈퍼맨이 가진 '인간성'입니다. 여기서 인간성이란 단순히 친절하거나 착한 성격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받고 흔들리며 때로는 좌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 타인을 위해 행동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영화 속 슈퍼맨은 전지전능한 신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로이스와 의견 충돌로 언쟁을 벌이고, 자신의 선택이 맞는지 고민하며, 혼자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들이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영화를 보는 내내 "그래, 저 사람도 결국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연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능력보다 감정이 먼저 보이는 슈퍼맨은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이었습니다.

     

    영화의 감정선은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주인공이 이야기를 통해 내면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서사 구조 위에 견고하게 쌓여 있습니다. 클라크 켄트는 친부모가 남긴 메시지에서 기대했던 답을 얻지 못하고 깊은 혼란과 절망에 빠집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은 오히려 너무 인간적이었습니다.

     

    그러다 켄트 부부와 함께했던 기억이 그를 다시 붙잡습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억지로 감동을 유도하는 연출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아주 담담하게, 그리고 조용하게 전달되는 감정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부모가 남겨준 사랑과 가치관이 한 사람을 끝까지 지탱해 준다는 메시지는 누구에게나 통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번 슈퍼맨이 특히 잘 잡아낸 지점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초인이 아닌 평범한 감정을 가진 클라크 켄트로서의 면모
    • 위기에 처한 약자를 먼저 챙기는 선함의 일관성
    • 부모의 영향력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통해 관객과 연결되는 방식
    • 로이스와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현실적인 갈등과 화해

    무엇보다 좋았던 건 영화가 선함을 결코 촌스럽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냉소와 비꼼이 익숙해진 시대에 끝까지 선한 선택을 하는 인물을 보여주면서도 전혀 유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클라크 켄트의 찌질함, 그게 오히려 매력이었습니다

     

    헨리 카빌의 슈퍼맨이 사이코패스 같았다는 평가를 종종 보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단순하게 보지는 않습니다. 카빌 버전은 신적인 존재가 인간 사회 안에서 느끼는 고독과 무게를 표현한 캐릭터였습니다. 반면 이번 데이비드 코렌스웻의 슈퍼맨은 훨씬 인간 쪽에 가까운 해석을 선택했습니다. 둘 중 누가 맞고 틀린 것이 아니라, 같은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영화를 보며 가장 크게 웃었던 장면도 사실 액션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로이스와 논쟁을 벌이다가 상처받은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객석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는데, 저 역시 웃으면서도 묘한 공감을 느꼈습니다. 세상을 구하는 슈퍼맨도 결국 연인에게 상처받고 삐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인간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작은 순간들이 쌓이면서 캐릭터는 훨씬 입체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관객은 더 이상 완벽한 영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응원하고 싶은 한 사람을 바라보게 됩니다.

     

    제임스 건 감독의 연출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롱테이크(Long Take)를 활용한 장면들은 강한 몰입감을 선사했습니다. 로이스를 중심으로 카메라가 회전하며 주변 전투 상황을 보여주는 시퀀스에서는 마치 현장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반적인 히어로 영화가 액션 자체를 과시하는 데 집중한다면, 이번 작품은 액션 속에서 인물이 무엇을 느끼는지를 먼저 보여줍니다. 그래서 전투 장면마저도 감정의 연장선처럼 느껴졌습니다. 화려한 시각효과보다 인물의 선택과 감정이 더 기억에 남는 액션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습니다.

     

    히어로 장르에서 관객 피로도(Audience Fatigu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같은 공식이 반복되면 관객은 점점 무감각해집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겪은 어려움 역시 여기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슈퍼맨은 거대한 혁신보다 더 중요한 선택을 했습니다. 바로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로 돌아간 것입니다. 누군가를 돕고 싶어 하는 사람, 세상이 뭐라고 해도 옳다고 믿는 일을 하는 사람, 그리고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 어쩌면 관객들이 그리워했던 건 새로운 설정이 아니라 그런 진심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임스 건이 슈퍼맨에게 입힌 현대적 감각

     

    이 영화를 단순히 클래식 회귀라고만 평가하는 건 절반만 보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겉모습은 전통적인 슈퍼맨에 가깝지만, 그 안에 담긴 시선은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입니다. 

     

    영화 속에는 우리가 매일 접하는 풍경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퍼지는 재난 영상, 순식간에 형성되는 여론, 온라인 공간에서 확대 재생산되는 혐오와 공격성까지. 영화를 보면서 몇몇 장면은 현실 뉴스 화면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악플을 달고 있는 원숭이 수천 마리가 등장하는 공간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기억에 남았습니다. 처음에는 우스꽝스럽게 보였지만 곱씹을수록 섬뜩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디지털 환경의 폭력성을 너무 정확하게 시각화한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웃기면서도 무섭고, 과장된 것 같으면서도 현실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이데올로기(Ideology)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해석이 많습니다. 전통적으로 미국적 가치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슈퍼맨이 오히려 국제정치와 군사적 방관을 비판하는 위치에 서 있다는 점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실 세계의 복잡한 문제들을 단순한 선악 구도로 처리하지 않고, 관객이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역시 흥미롭습니다. 대부분의 히어로 영화는 영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다릅니다. 시민들의 목소리와 기자들의 역할이 결말을 완성합니다. 슈퍼맨 혼자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세상을 바꾸는 구조입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오히려 이 영화가 슈퍼맨 영화이면서 동시에 인간에 대한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희망은 특별한 존재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DC 확장 유니버스(DCU)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작품은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방향을 잃었던 DC가 다시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번 슈퍼맨은 히어로 영화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 작품이었습니다. 냉소가 익숙한 시대에도 선함은 여전히 의미가 있는지, 희망이라는 가치가 여전히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지를 묻고 또 증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아주 단순한 답을 내놓습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끝까지 옳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38년 대공황 시절에 처음 등장했던 슈퍼맨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것처럼,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필요한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다시 보여줍니다.

     

    극장을 나오며 저는 오랜만에 다음 편이 기다려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단순히 세계관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저 슈퍼맨이라는 사람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준 슈퍼맨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45zyh0Ai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