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블 영화를 보러 갔다가 예상치 못하게 심리 치료를 받고 나온 느낌이 든다면, 그게 《Thunderbolts*》입니다. 거대한 빌런도, 멀티버스 붕괴도 없는데 왜 이 영화가 오랜만에 마블다운 마블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저도 처음엔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영화 썬더볼츠*: 공허(VOID)라는 심리적 장치, 마블이 이걸 왜 꺼냈을까
이번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액션이 아니라 '공허(Void)'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여기서 Void란 단순히 센트리(Sentry)의 또 다른 인격을 부르는 명칭이 아니라, 각 캐릭터가 억눌러온 트라우마와 결핍이 외부로 투영된 심리적 은유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직면하기 싫어서 눈을 돌리는 마음속 어두운 방 같은 것이죠.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이 장치가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게 작동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옐레나(Yelena)는 첫 번째 살인의 기억과 끊임없는 죄책감에 갇혀 있고, 존 워커는 캡틴 아메리카 타이틀을 박탈당한 굴욕과 가족 상실의 아픔을 품고 있습니다. 발(Val)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기억이 통제 불안과 권력 중독으로 굳어진 인물이고, 밥(Bob)은 가정 폭력과 약물 중독이라는 가장 날것의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트라우마 회피(Trauma Avoidance)라고 부릅니다. 트라우마 회피란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감정을 의식적으로 억누르고 외면함으로써 일시적 안정을 얻지만, 장기적으로는 관계 형성과 자아 통합을 방해하는 심리적 기제입니다. 영화는 이 개념을 Void라는 시각적 존재로 치환해서, 관객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냅니다. 실제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연구에 따르면 회피 행동은 단기적으로는 기능을 유지시키지만 장기적으로는 증상을 악화시킨다는 것이 밝혀져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마블 영화에서 이 정도 깊이의 심리 서사를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Avengers: Endgame》 이후 MCU가 세계관 확장에만 집중하면서 개별 캐릭터의 감정선이 희석됐다는 느낌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번 선택이 반가웠습니다.
센트리라는 캐릭터, 왜 액션보다 인간성에 집중했나
센트리(Sentry)는 원작 코믹스에서 태양 천만 개의 폭발력에 맞먹는 힘을 가진 존재로 설명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태양 천만 개의 폭발력이란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마블 우주 내에서 사실상 무제한에 가까운 물리력을 상징하는 수치입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도 버키(Bucky)의 비브라늄 팔을 손가락으로 뽑아버리고, 캡틴의 방패를 타코처럼 구겨버리는 장면은 짧지만 충분히 그 위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그런데 센트리의 액션이 생각보다 적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이 절제가 영화를 살렸다고 봅니다. 밥이라는 인간의 내면 붕괴와 회복을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본론이기 때문에, 센트리의 무력 시위는 그것을 위한 배경음 정도면 충분합니다. 만약 센트리의 액션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밥의 감정선은 뒤로 밀렸을 거고, 영화는 또 다른 스펙터클 소비품으로 끝났을 겁니다.
제 경험상 이런 캐릭터 중심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관객이 그 캐릭터를 '이해'하기 전에 '공감'하는 단계를 먼저 통과해야 합니다. 이번 영화는 밥을 처음부터 강자로 소개하지 않고, 공허하고 흔들리는 인간으로 먼저 제시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센트리로 변하는 순간이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데스크마스터(Taskmaster)의 퇴장에 대해서는 아쉽다는 반응이 많은데, 저는 조금 다르게 읽었습니다. 이 장면은 MCU가 "과거의 미완성 서사를 정리하고 새 체제로 전환한다"는 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팬 입장에선 섭섭하지만, 기능적으로는 주인공들의 감정선에 집중하기 위한 서사적 정리였다고 이해했습니다.
쿠키 영상이 암시하는 것, 별표(*)의 진짜 의미
이번 영화의 제목 뒤에 붙은 별표(*)는 단순한 디자인 요소가 아닙니다. 제목에 별표를 붙이는 표기법은 원래 주석이나 오타 수정을 의미하는 기호인데, 영화는 이것을 "이들은 아직 완성된 어벤져스가 아니라 수정 중인 존재"라는 메타 서사 장치(Meta-narrative Device)로 활용합니다. 메타 서사 장치란 작품 속 인물이나 설정이 작품 바깥의 맥락, 즉 관객이 가진 기대나 인식 자체를 의식하고 활용하는 구조적 기법입니다.
두 번째 쿠키 영상에서 뉴 어벤져스(New Avengers)가 등장하는데, 이들의 촌스러운 유니폼과 어색한 팀워크는 분명 의도적인 연출입니다. 샘 윌슨이 상표권 침해로 소송을 걸고, 밥이 한쪽에서 쉐이크를 빨며 "센트리가 되면 다른 애도 나온다"고 중얼거리는 장면은 앞으로의 서사에서 결정적인 복선으로 기능합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판타스틱 포(Fantastic Four)의 로켓. 위성 이미지에 잡힌 이 비행체는 초차원적 존재로 묘사되며 지구 616에 진입하는 장면으로 쿠키 영상이 마무리됩니다. 지구 616이란 MCU의 메인 타임라인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마블 코믹스의 공식 지구 번호 체계를 영화가 그대로 차용한 개념입니다.
MCU의 페이즈 구조에 대한 분석 자료에 따르면, 마블 스튜디오는 페이즈 5 이후부터 멀티버스 사가의 핵심 빌런으로 닥터 둠을 중심에 배치하는 방향으로 로드맵을 재편하고 있습니다.
《Thunderbolts*》는 거창한 위기를 구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문장은 "상처는 숨길수록 괴물이 되고, 나눌수록 빛으로 바뀐다"는 메시지입니다. 히어로라는 포장을 걷어내면 결국 각자의 공허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고, 그 공허를 혼자 버티는 대신 서로에게 내보이는 순간 비로소 팀이 된다는 이야기. 마블이 오랜만에 스케일 대신 감정으로 승부를 걸었고, 저는 그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판타스틱 포와의 연결, 닥터 둠과의 대결이 본격화되기 전에 이 영화를 꼭 챙겨보시길 권합니다. MCU의 다음 흐름을 이해하는 데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