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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썬더볼츠*> 후기 (공허, 인간성, 별표)

flowerpiggy 2026. 5. 25. 10:37

목차


     

    마블 영화를 보러 갔다가 예상치 못하게 심리 치료를 받고 나온 느낌이 든다면, 그게 《Thunderbolts*》입니다. 사실 극장에 들어갈 때만 해도 저는 늘 그래왔듯 새로운 MCU 작품을 보는 가벼운 마음이었습니다. 어떤 액션이 나올지, 어떤 쿠키 영상이 다음 작품을 예고할지, 그리고 새로운 캐릭터가 얼마나 강력하게 등장할지 정도를 기대하고 있었죠.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저는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눈앞에서는 분명 슈퍼히어로 영화가 끝났는데, 이상하게도 제 머릿속에는 액션 장면보다 인물들의 상처와 공허함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거대한 빌런도 없고, 세상이 무너질 위기도 없고, 멀티버스가 충돌하는 스케일의 재난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영화는 오랜만에 마블다운 마블처럼 느껴졌을까요. 저도 처음에는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답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이 영화는 사람을 구하기 전에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진솔하고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영화 썬더볼츠*: 공허(VOID)라는 심리적 장치, 마블이 이걸 왜 꺼냈을까

     

    이번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액션이 아니라 '공허(Void)'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여기서 Void란 단순히 센트리(Sentry)의 또 다른 인격을 부르는 명칭이 아니라, 각 캐릭터가 억눌러온 트라우마와 결핍이 외부로 투영된 심리적 은유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직면하기 싫어서 애써 외면하고 밀어 넣어 둔 마음속 어두운 방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이 설정이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통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내면의 상처는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한 배경 정도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Thunderbolts*》는 그 상처 자체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어올립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괴물처럼 형상화해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옐레나(Yelena)는 첫 번째 살인의 기억과 지워지지 않는 죄책감에 붙잡혀 있습니다. 겉으로는 냉소적이고 강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어린 시절부터 누적된 상처와 외로움이 자리 잡고 있죠. 존 워커는 캡틴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잃은 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한때 국가가 영웅이라 부르던 인물이 하루아침에 실패한 존재가 되었을 때 느끼는 허무함과 분노가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발(Val)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기억을 통제 욕구로 덮어버렸고, 밥(Bob)은 가정 폭력과 약물 중독이라는 가장 원초적이고 아픈 기억을 품고 살아갑니다.

     

    특히 밥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오래 남았습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사실은 가장 무너져 있는 사람이라는 설정은 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상처를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인간 자체의 문제로 접근합니다. 그래서 밥을 볼 때마다 '힘이 없는 사람이 약한 것이 아니라, 상처를 안고 버티는 사람이 가장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트라우마 회피(Trauma Avoidance)라고 부릅니다. 트라우마 회피란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감정을 의식적으로 억누르고 외면함으로써 일시적 안정을 얻지만, 장기적으로는 관계 형성과 자아 통합을 방해하는 심리적 기제입니다. 영화는 이 개념을 Void라는 시각적 존재로 치환해서, 관객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냅니다. 실제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연구에 따르면 회피 행동은 단기적으로는 기능을 유지시키지만 장기적으로는 증상을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MCU 영화에서 이 정도 깊이의 심리 서사를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Avengers: Endgame》 이후에는 세계관 확장과 멀티버스 설정이 너무 앞서 나가면서 정작 캐릭터 개인의 감정선은 흐려졌다는 인상을 받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가 보여준 선택은 더욱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오랜만에 마블이 "이 사람이 왜 아픈가"를 묻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말이죠.

     

    센트리라는 캐릭터, 왜 액션보다 인간성에 집중했나

     

    센트리(Sentry)는 원작 코믹스에서 태양 천만 개의 폭발력에 맞먹는 힘을 가진 존재로 설명됩니다. 사실 설정만 놓고 보면 MCU 역사상 손에 꼽힐 정도의 압도적인 파워를 가진 캐릭터입니다. 영화에서도 그 위력은 짧지만 강렬하게 드러납니다. 버키(Bucky)의 비브라늄 팔을 너무나 쉽게 분리해 버리고, 캡틴의 방패를 마치 종이처럼 구겨버리는 장면에서는 극장 안에서 탄성이 터져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영화가 그 힘을 과시하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인 슈퍼히어로 영화라면 이런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화려한 액션과 스펙터클을 쏟아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Thunderbolts*》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합니다. 액션은 절제하고, 대신 밥이라는 인간을 들여다보는 데 시간을 씁니다.

     

    저는 오히려 그 점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밥의 내면 붕괴와 회복이 이 영화의 핵심인데, 만약 센트리의 압도적인 힘만 계속 보여줬다면 정작 가장 중요한 감정은 묻혀버렸을 것입니다. 관객은 "와, 강하다"라고 감탄할 수는 있어도 "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감정까지는 가지 못했겠죠.

     

    실제로 제가 가장 몰입했던 순간도 액션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밥이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는 순간,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눈빛을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인간은 상대를 이해하기 전에 공감하게 됩니다. 영화는 그 과정을 아주 영리하게 활용합니다. 처음부터 밥을 초인으로 소개하는 대신 불안하고 공허한 인간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이후 센트리로 변하는 순간이 단순한 각성이 아니라 비극처럼 느껴집니다.

     

    데스크마스터(Taskmaster)의 퇴장에 대해서는 아쉽다는 반응도 많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 선택 역시 영화의 방향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MCU가 과거의 미완성 서사를 정리하고 새로운 팀의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선택한 장면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팬으로서는 아쉽지만, 이야기 전체를 위해서는 필요한 정리였다고 받아들였습니다.

     

    쿠키 영상이 암시하는 것, 별표(*)의 진짜 의미

     

    이번 영화의 제목 뒤에 붙은 별표(*)는 단순한 디자인 요소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독특한 타이틀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작은 기호가 작품 전체를 설명하는 핵심 장치처럼 느껴졌습니다. 원래 별표는 수정 사항이나 주석을 의미하는 기호입니다. 영화는 이를 활용해 "이들은 아직 완성된 영웅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생각해 보면 썬더볼츠 멤버들은 누구 하나 완벽한 영웅이 아닙니다. 실패했고, 상처받았고, 실수했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불완전함 자체를 가치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별표는 미완성의 표시이자 성장 가능성의 상징처럼 보입니다.

     

    두 번째 쿠키 영상에서 등장하는 뉴 어벤져스(New Avengers) 역시 그런 의미를 이어갑니다. 촌스러운 유니폼과 어색한 팀워크는 웃음을 유발하지만, 동시에 이들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샘 윌슨의 소송 이야기나 밥의 불안한 한마디 역시 가벼운 농담처럼 보이지만 앞으로 펼쳐질 갈등을 암시하는 중요한 복선으로 읽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판타스틱 포(Fantastic Four)의 로켓. 그 장면이 나오는 순간 극장 안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MCU가 또 다른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지구 616으로 접근하는 이들의 등장은 단순한 팬서비스가 아니라 향후 멀티버스 사가의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신호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영화가 거대한 미래를 예고하면서도 끝까지 현재의 감정을 놓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결국 《Thunderbolts*》는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상처를 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마음속에 남은 문장은 "상처는 숨길수록 괴물이 되고, 나눌수록 빛으로 바뀐다"는 메시지였습니다.

     

    히어로라는 화려한 포장을 걷어내면 결국 우리 모두는 각자의 공허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공허를 혼자 견디는 대신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을 때 비로소 다시 앞으로 걸어갈 힘을 얻습니다. 《Thunderbolts*》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블은 오랜만에 스케일보다 감정을 선택했고, 저는 그 선택이 매우 현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판타스틱 포와 닥터 둠의 거대한 이야기 역시 기대되지만, 그 전에 반드시 이 영화를 먼저 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MCU의 다음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오랜만에 사람의 마음을 진심으로 들여다보는 슈퍼히어로 영화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wABZtdGfZ_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