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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들어갈 때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다.
좌석을 찾아 앉고, 팝콘을 내려놓고, 3D 안경을 챙겼다.
요즘은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굳이 극장까지 찾아가는 일이 예전만큼 특별하지도 않다. 집에서도 충분히 좋은 화질로 영화를 볼 수 있고, 보고 싶은 작품을 원하는 시간에 틀어놓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아바타: 불과 재>가 시작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화면이 커지면서 판도라의 풍경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숲의 색감이 깊게 들어오고, 움직이는 생명체가 화면을 가로지를 때마다 시선이 저절로 따라갔다.
소리가 커졌다.
의자까지 미세하게 울렸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런 영화 때문에 아직 극장에 오는구나.
실제로 영화는 개봉 4일 만에 국내 누적 관객 102만 4,258명을 기록하며 100만 관객을 넘어섰다. 특수관과 3D 상영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도 상당했다.
물론 아바타라는 이름의 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영화를 보고 나니 사람들이 굳이 시간을 내어 영화관을 찾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 영화는 화면으로 보는 것과 그 안에 들어가는 것 사이에 차이가 꽤 크다.
영화를 다 본 뒤에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주변에서는 하나둘씩 옷을 챙기고 있었다.
나도 나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조금 더 앉아 있고 싶었다.
눈앞에는 여전히 검은 재가 흩날리는 것 같았고, 귀에는 영화 속 불길과 음악이 남아 있는 듯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계속 생각했다.
스트리밍으로도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에 극장은 왜 필요한 걸까.
이번 <아바타: 불과 재>는 그 질문에 꽤 분명한 답을 내놓은 영화였다.
화면을 보는 것과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은 조금 달랐다
아바타 시리즈를 극장에서 보는 즐거움은 역시 화면에서 시작된다.
특히 이번 작품은 3D로 봤을 때 공간감이 상당했다.
상영 전에는 3D 안경이 조금 신경 쓰였다.
장시간 착용하면 눈이 피곤할 것 같았고, 빠른 장면에서는 화면이 어지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막상 영화가 시작되니 예상했던 불편함은 크지 않았다.
판도라의 숲을 가로지르는 장면에서는 앞쪽의 식물과 뒤쪽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나뉘었다. 캐릭터가 움직이면 배경까지 함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불과 재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그 깊이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불꽃이 번지고 검은 재가 흩날린다.
화면 속에서 무언가가 앞으로 튀어나오는 순간도 있었지만, 오히려 눈에 오래 남은 것은 앞과 뒤가 겹쳐지는 공간감이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한두 번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움직여 화면의 깊이를 확인했다. 그냥 평면으로 볼 때는 지나쳤을 배경의 움직임까지 눈에 들어왔고, 그 순간에는 3D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있었다.
이번 작품은 HFR(High Frame Rate)도 활용한다.
일반적인 영화보다 많은 프레임을 사용해 움직임을 더 부드럽고 선명하게 보여주는 방식이다. <아바타: 불과 재> 역시 일부 장면에서 48fps HFR을 활용했으며, 3D와 결합했을 때 빠른 움직임이나 복잡한 장면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영화를 볼 때는 기술 이름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이런 느낌이었다.
‘이상하게 편하네.’
빠르게 움직이는 장면에서도 시선이 쉽게 놓치지 않았다.
관련 기술을 찾아보고 나서야 그때 느꼈던 차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재미있다.
좋은 기술은 관객에게 자기 존재를 자랑하지 않는다.
화면이 얼마나 정교한지 계속 의식하게 만드는 대신, 어느 순간부터 기술 자체를 잊게 한다.
관객은 그냥 그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아바타가 가진 힘도 여기에 있다고 느꼈다.
거대한 생명체가 움직이고, 숲이 흔들리고, 물이 쏟아지고, 불길이 화면을 집어삼킨다.
그 순간에는 ‘CG가 대단하다’는 생각보다 내가 그 공간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 먼저 온다.
집에서 영화를 볼 때와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의 차이를 가장 크게 느낀 지점도 바로 이것이었다.
집에서는 내가 화면을 바라본다.
극장에서는 화면이 나를 둘러싼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그런데 <아바타: 불과 재>가 단순히 볼거리만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가 끝난 뒤 더 오래 남은 것은 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네이티리다.
네이티리의 얼굴이 오래 남았던 이유
<아바타: 불과 재>에서 가장 많이 떠오른 장면을 하나 고르라면 거대한 전투 장면보다 네이티리의 얼굴을 고르고 싶다.
네테이암을 잃은 뒤 그녀가 보여주는 감정은 한 가지로 설명하기 어렵다.
화가 난 것 같다가도 금방 무너질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과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동시에 있는 듯했다.
특히 얼굴에 검은 재가 묻은 모습이 강하게 남았다.
예쁜 얼굴을 보여주는 장면도 아니고, 압도적인 CG를 자랑하는 장면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상처받은 사람이 너무 오래 울어서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는 듯한 표정.
그 얼굴을 보고 있을 때는 이상하게 팝콘을 집던 손도 멈췄다. 앞에서는 계속 거대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화면 속에서 무엇이 폭발하는지보다 네이티리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가 더 신경 쓰였다.
이 장면이 오래 남은 이유는 전쟁의 규모보다 상실의 크기가 가까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네테이암의 죽음 이후 설리 가족에게도 균열이 생긴다.
같은 슬픔을 겪었는데 모두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화를 내는 사람이 있고, 말없이 견디는 사람이 있다.
자신을 탓하는 사람도 있다.
가족이라고 해서 같은 방식으로 슬퍼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까운 사이일수록 감정을 숨기기 어렵고, 서로에게 날카로운 말을 던지기도 한다.
이 부분이 이번 영화에서 꽤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큰일을 함께 겪으면 가족이 더 가까워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가 될 수도 있다.
슬픔을 견디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네이티리는 인간에 대한 분노를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제이크 역시 가족을 지키기 위해 판단을 내린다.
아이들은 부모가 선택한 방향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특히 키리와 로아크는 자신들의 방식으로 사건을 받아들이고 움직인다.
그 변화가 이번 작품에서 중요하다.
<아바타: 불과 재>는 네테이암의 죽음 직후 시작하면서 설리 가족의 상실을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해외 평론에서도 네이티리의 분노와 가족 내부의 갈등, 키리와 스파이더의 ‘경계에 선 존재’라는 위치가 중요한 축으로 평가됐다.
쿼리치와 망콴족의 관계도 눈에 들어왔다.
외부에서 무기를 들여오고 갈등을 키우는 방식은 판도라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낯설지가 않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한 번쯤 봤던 모습이고, 뉴스에서 비슷한 장면을 접하기도 했다.
서로 다른 집단이 싸우는 동안 그 틈을 이용하는 사람들.
그래서 이 영화의 전쟁 장면을 단순한 액션으로만 바라보기는 어려웠다.
화면은 판도라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어쩐지 인간의 역사와 너무 닮아 있었다.
이번 작품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망콴족과 그들을 이끄는 바랑은 판도라 안에서도 또 다른 가치관과 폭력성을 보여준다. 바랑과 쿼리치의 관계가 영화에서 특히 강렬한 부분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판도라는 아름답다.
그런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 대비가 이번 작품에서도 꽤 선명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스파이더와 키리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스파이더는 인간이지만 판도라에서 나비족과 함께 살아왔다.
그런데 여전히 판도라의 공기를 그대로 마실 수 없어 산소 마스크가 필요하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 경계 자체가 흔들린다.
스파이더가 판도라의 공기를 직접 호흡할 수 있게 되는 변화는 앞으로의 이야기를 크게 바꿀 수 있는 사건이다. 해외 평론에서도 이 변화가 인간의 판도라 적응과 군사적 이용 가능성을 둘러싼 중요한 갈등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키리 역시 자신의 정체와 에이와와의 관계를 둘러싼 질문을 계속 품고 있다.
그래서 이번 영화는 부모 세대의 이야기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제이크와 네이티리가 만들어놓은 세계를 아이들이 그대로 물려받는 과정이 조금씩 흔들린다.
어쩌면 앞으로의 아바타는 이 아이들이 자신들의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극장이 필요한 영화는 따로 있는 것 같다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가끔 극장에 가는 일이 귀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시간을 맞춰야 하고, 이동해야 하고, 앞뒤 좌석의 사람도 신경 쓰인다.
집이라면 잠옷을 입고 소파에 누워 편하게 볼 수 있다.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잠시 멈추면 된다.
극장이 훨씬 불편하다.
그런데 그 불편함 때문에 오히려 영화에 집중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휴대폰을 확인할 수도 없다.
잠깐 다른 영상을 틀 수도 없다.
영화가 시작하면 오랫동안 그 어둠 속에 앉아 있어야 한다.
<아바타: 불과 재>를 보고 있으면서 그 사실이 오히려 좋았다.
내가 영화에 맞춰야 했다.
영화가 나에게 시간을 내달라고 요구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에는 다른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거대한 화면 때문이기도 했고, 사운드 때문이기도 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주변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서 같은 영화를 본다면 중간에 물을 마시러 일어날 수도 있고, 휴대폰 알림을 확인할 수도 있다.
극장에서는 그럴 수 없다.
그냥 앉아 있게 된다.
그 단순한 차이가 의외로 컸다.
특히 키리의 각성 장면에서는 극장 전체가 조용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화려한 액션이 이어지는 순간보다 오히려 이런 장면에서 큰 스크린의 힘이 더 잘 느껴졌다.
그때는 옆자리에서 팝콘 봉지가 움직이는 소리조차 신경 쓰일 정도로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키리의 표정을 따라가다가 장면이 끝나고 나서야 내가 한동안 숨을 거의 쉬지 않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스파이더의 변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판도라에서 인간이 호흡할 수 있다는 설정은 앞으로 인간과 나비족의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까지 흔들 수 있는 변화다.
지금까지 선명했던 경계가 조금씩 흐려지는 셈이다.
이 변화가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현재 <아바타 4>는 2029년 개봉 일정이 잡혀 있으며, 후속편은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를 더욱 확장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향후 일정은 제작 상황에 따라 변동될 가능성이 있다.
제이크의 시대에서 로아크와 키리의 시대로 이야기가 조금씩 넘어가고 있다.
어릴 때 부모가 만들어놓은 세계를 그대로 믿었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 변화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기다려진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전작에서 익숙했던 갈등과 비슷한 흐름이 다시 등장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는 ‘이 장면을 전에 본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실제로 해외 평론에서도 영화의 시각적 성취는 높게 평가하면서도 이야기 구조가 <아바타: 물의 길>을 반복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BFI는 영화의 규모와 시각적 야심을 인정하면서도 서사가 이전 작품의 전투 구조를 되풀이한다고 지적했고, AVForums 역시 3D의 몰입감은 높게 평가하면서 이야기의 반복성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나 역시 몇몇 장면에서는 익숙한 장면을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페이스허거가 아니라면 아바타에는 이런 장면이 나오겠구나, 하고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영화의 큰 흐름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바랑 역시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캐릭터인데, 더 깊게 들여다볼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러닝타임이 긴 작품인데도 몇몇 인물의 이야기는 오히려 짧게 지나간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고 난 뒤 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요즘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반드시 극장에 갈 필요는 없다.
이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좋은 TV가 있고, 스트리밍 서비스가 있고, 원하는 시간에 영화를 볼 수 있다.
영화관보다 편한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고 모든 영화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영화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어떤 영화는 화면의 크기와 소리, 어둠과 사람들의 침묵까지 함께 있어야 온전히 느껴진다.
<아바타: 불과 재>는 후자에 가까웠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건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불꽃이 사라지고 재가 가라앉은 뒤에도 판도라의 풍경이 눈앞에 남아 있었다.
음악이 끝났는데도 귀에는 낮게 울리던 소리가 남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조금 허전했다.
두 시간 넘게 머물렀던 세계에서 갑자기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그날 집에 도착해서도 바로 다른 영상을 틀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영화를 보고 난 뒤 휴대폰을 확인하거나 다른 영상을 켰을 텐데, 그날은 한동안 그냥 조용히 있었다.
아직 영화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때 알았다.
극장의 역할은 영화를 더 편하게 보여주는 데 있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반대다.
조금 불편하고, 시간을 따로 내야 하고, 정해진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
대신 그만큼 다른 일에서 잠시 떨어져 영화 한 편에 온전히 머물 수 있다.
그리고 아주 가끔, 그 시간이 꼭 필요한 영화가 나온다.
<아바타: 불과 재>가 내게는 그런 영화였다.
집에서 볼 수 있는 영화가 넘쳐나는 시대에 굳이 영화관을 찾아가야 할 이유를 묻는다면 이번에는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크린이 커서만은 아니다.
그 세계 안에 잠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는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울 정도로.
그런 영화 한 편을 만나러 가는 것.
어쩌면 우리가 아직도 극장을 찾는 가장 좋은 이유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