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심히 일하면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까?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믿음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이었는지 새삼 실감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 없다는 한 남자의 해고 이후를 따라가는 영화인데, 웃다가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경험을 극장에서 하게 됩니다.
영화 어쩔수가 없다: 20년 경력도 막지 못한 구조 조정의 논리
주인공 유만수는 태양제지에서 20년 넘게 일하며 펄프맨상까지 받은 인물입니다. 펄프맨상이란 제지 업계에서 수십 년간 현장을 지킨 숙련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업계 내부 포상으로, 쉽게 말해 그 바닥에서 가장 인정받는 사람에게 주는 상입니다. 그런 그가 미국계 사모펀드에 회사가 인수되면서 하루아침에 구조조정 대상이 됩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불편했던 건, 이게 전혀 낯선 풍경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해고는 성과가 나쁜 사람이 당하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경력이 길수록, 연봉이 높을수록 먼저 잘려나가는 구조가 한국 노동시장에서 반복됩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리해고 시 50대 이상 노동자의 비율이 전체 정리해고 인원의 절반을 넘는 경우가 다수 보고되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 구조를 "도끼질"이라는 이중 기호로 표현합니다. 미국 본사 경영진이 "미국에서는 해고를 도끼질이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은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이 도끼가 나중에 만수의 손에 들려 진짜 무기가 된다는 점에서 섬뜩한 복선입니다. 해고라는 시스템의 폭력과 개인이 저지르는 폭력이 같은 단어로 묶인다는 설정, 이게 이 영화에서 저를 가장 사로잡은 지점입니다.
영화 속 만수가 처한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20년 이상 경력의 제지 전문가였으나 미국계 사모펀드의 인수 후 정리해고 통보
- 3개월 구직 활동에도 연령과 업종 특수성으로 인해 사실상 재취업 불가
- 대출 3억 원이 넘는 자가 주택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 선택으로 치달음
중년 위기의 어쩔수가 없다는 합리화
이 영화의 가장 날카로운 부분은 제목 자체가 하나의 비극적 철학으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란 카메라에 담기기 전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배우의 위치, 세트, 소품 등을 총괄하는 영화 연출 개념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미장센을 통해 만수의 저택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의 자존심과 집착, 그리고 몰락의 무대 그 자체가 되도록 설계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단순히 "남성 가장의 몰락"으로 읽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만수는 시스템의 피해자인 동시에, 아내 미리가 제안한 현실적 대안들을 모조리 거부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집을 팔아 대수동 아파트 전세로 이사하는 것, 업종을 바꾸는 것, 삶의 수준을 낮추는 것. 이 선택지들은 충분히 존재했습니다. 그럼에도 만수는 스스로가 만들어온 성공의 형태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못합니다.
블랙 코미디(black comedy)란 비극적이거나 불편한 소재를 웃음의 형식으로 다루는 장르 기법입니다. 이 영화는 이 기법을 통해 관객이 만수를 비웃다가 자신을 보게 만드는 구조를 취합니다. 솔직히 영화관에서 웃다가 순간 멈칫했습니다. "내가 만수 같은 처지였으면 진짜 다르게 행동했을까?"라는 물음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종이"라는 소재의 쓰임입니다. 만수는 종이가 세상 모든 곳에 쓰인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그의 인생 자체가 구겨지고 버려지는 종이처럼 처리됩니다. 기록과 기억의 매체인 동시에 가장 쉽게 훼손되는 물질. 이 이중성이 영화 전반에 조용히 깔려 있었고, 저는 그 상징을 뒤늦게 곱씹으면서 영화가 훨씬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이병헌이 연기한 만수는 알파남으로서의 카리스마를 스스로 갉아먹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구축합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란 그리스 비극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관객이 작품 속 인물의 고통과 파국을 통해 감정적 해방감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영화는 그 카타르시스를 끝내 완전히 허락하지 않습니다. 만수가 원하던 자리를 얻는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은 쾌재 대신 공허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게 이 영화가 선택한 가장 잔인한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AI 자동화 시대, 만수는 우리의 미래인가
영화는 단순히 한 중년 남자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만수가 어렵게 취직한 회사에서 로봇이 종이 롤을 옮기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가 수십 년간 쌓아온 기술을 기계가 대체하는 공장이, 바로 그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 그 자리라는 역설입니다.
일반적으로 자동화가 일자리를 위협하는 건 단순 반복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특수지 라인 관리나 제지 공정 감독처럼 고도로 숙련된 직무 역시 AI와 자동화 시스템 앞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영화는 조용히 보여줍니다. 실제로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 세계 노동자의 약 15%가 자동화로 인해 직무 전환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이 영화에서 세 번 반복된다는 점도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 본사가 해고를 통보하며 쓰고, 만수가 살인을 앞두고 자신을 세뇌하며 쓰고, 새 고용주가 AI 자동화 도입을 정당화하며 씁니다. 시스템의 폭력과 개인의 자기합리화가 같은 문장을 공유한다는 것. 이 점이 이 영화를 단순한 장르 영화 이상으로 만드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9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은 영화가 왜 그런 반응을 이끌어냈는지, 극장에서 직접 확인하고 나니 이해가 됐습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산업이 사람을 삼키고 뱉어내는 구조가 작동하는 모든 나라에서 유효합니다.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 이후 다시 한 번 증명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저는 극장을 나오면서 만수보다 미리를 더 오래 생각했습니다. 가장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가장 먼저 다음 발을 내딛는 사람이 결국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요. 극장을 찾기 전에 영화의 배경이 되는 구조조정과 제지 산업에 대해 조금만 알고 가면 영화의 여러 층위가 훨씬 선명하게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