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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체> - 우리는 진화하고 있는가 아니면 인간다움을 잃어가고 있는가

mynote45009 2026. 9. 8. 07:03

목차


     

    연상호 감독의 <군체>는 익숙한 좀비 영화의 틀을 빌리면서도 꽤 다른 방향으로 공포를 만든다.

     

    감염자가 달려온다. 생존자들은 건물 안에서 도망친다. 누가 감염됐는지 확인하고, 탈출할 방법을 찾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익숙한 재난 영화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진짜 무서운 변화는 좀비가 빨라지는 데 있지 않다.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다는 것.

     

    영화 속 감염자들은 각각 떨어진 개체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한 개체가 얻은 경험이 다른 개체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처음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감염자들이 점점 인간의 행동을 학습하고, 새로운 정보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군체 전체의 움직임이 달라진다.

     

    연상호 감독 역시 <군체>를 기존 좀비 영화보다 좀비 자체에 집중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집단 지성을 가진 좀비가 빠르게 진화하는 동안 인간은 오히려 퇴화하는 모습을 그렸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한 가지 질문이 따라왔다.

     

    우리는 진화하고 있는가, 아니면 인간다움을 잃어가고 있는가.

     

    집단 지성 좀비가 무서운 이유

     

    <군체>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좀비에게 새로운 능력을 하나씩 추가하는 방식이다.

     

    처음 감염자들은 짐승처럼 기어 다닌다. 움직임도 어설프고 행동에도 일정한 규칙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진다.

     

    두 발로 걷는다.

     

    사람을 식별한다.

     

    주변의 행동을 관찰한다.

     

    그리고 자신이 얻은 정보를 다른 감염자들과 공유한다.

     

    연상호 감독의 설명처럼 영화 속 좀비는 기존 장르에서 흔히 보던 고정된 규칙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상황을 경험할 때마다 새로운 정보를 얻고 그에 맞춰 행동을 바꾼다.

     

    이 설정이 들어오면서 좀비를 상대하는 방법도 달라진다.

     

    빠른 좀비라면 도망가면 된다.

     

    힘이 센 좀비라면 무기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학습하는 좀비라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내가 숨어 있던 장소를 기억한다면?

     

    내가 사용했던 방법을 학습했다면?

     

    더 무서운 것은 그 정보가 한 마리에게만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수많은 개체가 하나의 네트워크처럼 연결되어 있다.

     

    영화에서 감염자들이 동시에 같은 방향을 바라보거나 움직이는 장면은 그래서 유난히 기괴하다. 각각의 몸은 분명 따로 있는데 판단은 하나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영화의 좀비 연기에는 현대무용가들이 대거 참여했고, 연상호 감독은 이를 통해 기존 좀비와 다른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얼굴보다 몸의 움직임이 먼저 들어온다.

     

    사람처럼 생겼다.

     

    그런데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이 어긋남이 꽤 불편하다.

     

    특히 여러 감염자가 한꺼번에 방향을 바꾸는 순간에는 한 마리의 괴물을 보는 기분과 조금 다르다. 커다란 생명체 하나가 수십 개의 몸을 빌려 움직이는 듯하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평소 모습이 떠올랐다.

     

    인터넷에서는 누군가 올린 정보가 순식간에 퍼진다. 한 사람의 표현이 수많은 사람의 말이 되고, 같은 영상이 반복해서 공유되면서 어느 순간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된다.

     

    나 역시 그 흐름 안에 있다.

     

    유행하는 영화를 검색하고,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읽고, 평점이 낮으면 보기 전부터 기대치를 조정한다. 어떤 작품은 내가 직접 느낀 감정보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더 강하게 남을 때도 있다.

     

    그 순간 조금 묘했다.

     

    영화 속 군체와 인간 사회를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래도 정보를 공유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개인의 판단은 어떻게 달라지는가라는 질문은 남았다.

     

    연결은 분명 편리하다.

     

    문제는 연결이 너무 강해졌을 때다.

     

    내가 판단하기 전에 이미 다른 사람이 판단을 끝냈고, 내가 생각하기 전에 수많은 의견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면 나는 어디까지 내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군체>의 좀비가 불편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인간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앤트밀과 집단 지성, 연결될수록 강해지는 존재의 약점

     

    영화 후반부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거대한 괴물의 등장보다 군체의 연결성이 약점으로 뒤집히는 순간이다.

     

    영화 속 군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강하다.

     

    한 개체가 경험한 것을 다른 개체가 공유한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전체의 행동이 바뀐다. 인간이라면 각자 경험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배워야 할 것을 군체는 훨씬 빠르게 축적한다.

     

    효율만 보면 놀라운 진화다.

     

    그런데 연결이 강해질수록 작은 오류 하나도 커질 수 있다.

     

    영화 후반부의 혼란을 보면서 앤트밀(Ant Mill) 현상이 떠올랐다. 앤트밀은 개미가 앞선 개체의 움직임을 따라가면서 원형의 행렬을 만들고, 같은 경로를 계속 반복하는 현상이다.

     

    앞의 개미를 따라간다.

     

    앞의 개미도 다른 개미를 따라간다.

     

    모두가 움직이고 있지만 아무도 전체 방향을 결정하지 않는다.

     

    <군체>의 세계를 바라보는 데 꽤 재미있는 비유였다.

     

    모두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모두가 올바른 판단을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군체도 비슷하다.

     

    정보가 빠르게 전달되기 때문에 엄청난 힘을 발휘하지만, 그 정보 체계에 오류가 생기는 순간 강점이 약점으로 바뀐다.

     

    컴퓨터를 사용하다가 갑자기 시스템 전체가 멈춰버리는 순간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조금 전까지는 완벽하게 작동했다.

     

    그런데 아주 작은 오류 하나가 전체 시스템을 흔든다.

     

    <군체>가 재미있는 것은 이 지점에서다.

     

    영화 속 군체는 인간보다 뒤처진 존재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인간보다 훨씬 앞서 있다.

     

    빠르게 배우고, 정보를 공유하고, 집단으로 움직인다.

     

    연상호 감독이 말한 것처럼 좀비는 원시적인 상태에서 시작해 급격하게 진화한다. 반면 인간은 문명 속에서 오히려 야만으로 퇴화한다.

     

    그렇다면 진화란 무엇일까.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더 빠르게 판단하는 것?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

     

    만약 그것들이 진화의 기준이라면 영화 속 군체는 인간보다 훨씬 앞선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효율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손해를 알면서도 다른 사람을 돕는 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채 함께 살아가는 일.

     

    때로는 비합리적인 감정을 선택하는 일.

     

    이런 것들은 군체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비효율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인간답다고 부른다.

     

    영화 속 서영철이라는 인물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인간의 갈등과 비극이 소통의 불완전함에서 비롯된다고 믿고,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새로운 형태의 존재를 꿈꾼다. 영화는 그의 생각을 통해 개별성이 사라진 상태가 정말 더 나은 진화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 영화가 조금 더 깊게 들어갔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군체가 누군가에게 통제되는 존재를 넘어 스스로 판단하는 새로운 생명체가 됐다면 어땠을까.

     

    인간을 공격하는 이유조차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변한다면?

     

    그때 우리는 그 존재를 여전히 좀비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 질문까지 갔다면 <군체>의 세계가 훨씬 오래 머릿속에 남았을 것 같다.

     

    그래도 영화가 던진 질문 자체는 충분히 재미있다.

     

    많이 연결된 존재가 반드시 더 자유로운 존재일까?

     

    영화 <군체> 결말이 남긴 질문, 우리는 정말 진화하고 있는가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이상하게 사람들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지하철역에서 사람들이 비슷한 속도로 걸어간다.

     

    앞사람이 계단으로 향하면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사람이 생긴다. 누군가 멈추면 뒤에 있던 사람들은 방향을 바꾼다.

     

    휴대폰을 보고 있는 모습도 비슷하다.

     

    같은 시간에 같은 뉴스가 올라오고, 같은 영상이 공유되고, 비슷한 말들이 반복된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장면들이다.

     

    그날은 <군체> 때문인지 잠깐씩 눈에 걸렸다.

     

    물론 사람을 영화 속 감염자와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나는 얼마나 내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을까.

     

    SNS에서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영화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찾아본다. 좋은 평가가 많으면 기대가 커지고, 혹평이 많으면 보기 전부터 걱정한다.

     

    영화를 본 뒤에도 다른 사람의 리뷰를 읽는다.

     

    그러다 보면 이상한 순간이 생긴다.

     

    분명 내가 영화를 보고 느낀 감정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의 해석을 읽고 나면 그 감정이 조금씩 달라진다.

     

    '내가 정말 그렇게 느꼈던가?'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정보가 많아졌다고 해서 판단력이 자동으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연결되어 있다고 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보가 너무 빨리 흘러갈 때는 잠시 멈추는 일이 어려워진다.

     

    검색하고, 확인하고, 비교하고, 또 다른 의견을 찾아본다.

     

    그러다 보면 정작 내가 처음 무엇을 궁금해했는지 잊어버리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군체>가 단순한 좀비 영화보다 조금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영화의 출발점은 감염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감염보다 연결이라는 단어가 더 오래 남는다.

     

    누군가의 기억을 공유하고, 누군가의 경험을 받아들이고, 모두가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존재.

     

    굉장히 강력하다.

     

    동시에 굉장히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는 '나'의 판단이 점점 작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군체>의 좀비가 인간보다 진화한 존재라면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차이는 무엇일까.

     

    기억일까.

     

    감정일까.

     

    자유의지일까.

     

    아니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일까.

     

    영화 속 군체는 하나의 의지를 가지고 움직인다.

     

    인간은 계속 충돌한다.

     

    같은 정보를 보고도 다른 선택을 한다.

     

    때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효율적이지도 않다.

     

    그런데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군체>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장면도 그런 의미에서 좀비의 얼굴이 아니었다.

     

    수많은 감염자가 한꺼번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움직이는 모습.

     

    수십 개의 몸.

     

    하나의 의지.

     

    그리고 그 안에서 희미해지는 개별성.

     

    연상호 감독은 인간이 문명에서 야만으로 퇴화했을 때 무엇이 남는지에 관심을 두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 질문을 조금 뒤집어보면 이런 생각에 닿는다.

     

    인간다움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에 있는 것은 아닐까.

     

    <군체>는 완벽하게 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대신 꽤 불편한 질문 하나를 남긴다.

     

    더 빠르게 연결되고,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세상이 정말 인간에게 더 좋은 세상일까.

     

    영화를 본 뒤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됐다.

     

    그때 잠깐 멈춰서 생각했다.

     

    지금 나는 내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는 걸까.

     

    아마 <군체>를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는 질문은 그것일 것이다.

     

    좀비가 얼마나 무서운지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군체에 가까워지고 있는지.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O3wiUvoI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