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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 영화를 완전히 잘못 예측했습니다. 포스터에서 탁구채를 든 티모시 샬라메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아, 재능 있는 선수가 역경을 딛고 정상에 오르는 스포츠 성장 영화겠구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경기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마지막에는 감동적인 우승 장면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으며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고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제 예상은 보기 좋게 무너졌습니다.
스크린 속에서 펼쳐진 것은 승리의 드라마가 아니라 욕망의 드라마였습니다. 마티 슈프림은 탁구를 소재로 삼았을 뿐, 결국 인간이 성공을 향해 달려갈 때 어디까지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욕망이 주변 사람들까지 어떻게 집어삼키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가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불편했고, 동시에 그 불편함 때문에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끝없이 흔들리는 감정 속에서 저는 어느 순간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마티라는 사람을 분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화려한 경기 장면이 아니라, 욕망으로 가득 찬 한 청년의 흔들리는 눈빛이었습니다. 그 눈빛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제가 올해 본 작품들 가운데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영화가 되었습니다.
영화 마티 슈프림: 공감하기 어려운 주인공, 그런데 왜 눈을 뗄 수 없는가
영화를 보는 내내 제 머릿속에는 같은 질문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나는 왜 이런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걸까?'
마티 마우저는 결코 선한 주인공이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거짓말도 하고, 사기도 치며, 양심보다 성공을 먼저 선택합니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응원하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의 다음 행동이 궁금해지고, 또 어떤 선택을 할지 계속 지켜보게 됩니다. 그 모순된 감정이야말로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마티는 미국 탁구 국가대표 출신의 뛰어난 실력자입니다. 하지만 그의 진짜 목표는 경기에서 우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브랜드인 '마티 슈프림'을 세상 최고의 탁구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거대한 꿈을 품고 있습니다. 그 꿈을 설명하는 장면은 예상보다 훨씬 흥미로웠습니다.
당시 탁구는 흰 공을 사용했기 때문에 선수들이 검은 유니폼을 입어야 했고, 그 때문에 촌스럽고 대중성이 부족한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마티는 오렌지색 공을 사용하면 흰 유니폼도 가능해지고, 테니스처럼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스포츠가 될 것이라고 투자자들을 설득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순간적으로 '이 사람 말이 맞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풍처럼 들리지만 묘하게 논리가 있었고, 황당하지만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 아슬아슬한 균형이 바로 마티라는 인물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였습니다.
영화는 여기서 언더독 서사를 절묘하게 활용합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마티를 응원하게 만듭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성공해 자신을 떠날까 봐 중요한 경기마다 응급실에 실려 간 척 연기를 하고, 삼촌은 신발 가게에서 계속 일을 시키기 위해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마티만큼은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 감정을 오래 두지 않습니다.
마티는 할아버지가 맡긴 강아지 치료비를 훔쳐 도박판 같은 내기 탁구에 사용합니다. 바로 직전까지 그를 응원하던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분명 피해자인데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한 사람. 불쌍하지만 결코 착하지 않은 사람. 응원하고 싶지만 쉽게 용서할 수도 없는 사람. 이 영화는 관객이 감정을 정리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스포츠 장면에서는 실제 국가대표 선수처럼 자연스럽고, 욕망에 사로잡힌 순간에는 눈빛 하나만으로도 인물의 불안과 집착을 모두 표현합니다. 특히 탁구 경기에서는 연기보다 실제 경기를 보는 듯한 몰입감이 느껴졌습니다. 배우가 얼마나 오랜 시간 준비했는지가 화면 너머까지 전해졌고, 덕분에 경기 장면마다 심장이 저절로 빨라졌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은 감정은 '좋아한다'도 '싫어한다'도 아니었습니다. 끝내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만들어낸 것 자체가 이 영화의 가장 뛰어난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핑퐁처럼 오가는 감정이 영화의 형식이 되다
조시 사프디 감독은 관객을 절대 편하게 두지 않는 감독입니다. 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쉬지 않고 랠리를 이어가는 탁구 경기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듭니다. 긴장이 조금 풀리려는 순간 또 다른 문제가 등장하고, 해결될 것 같으면 더 큰 갈등이 덮쳐옵니다.
마티 슈프림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한순간은 웃고 있다가 다음 순간에는 숨이 막히고, 안도했다가 곧바로 불안해집니다. 감정이 마치 탁구공처럼 좌우로 끊임없이 튀어 다닙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까지 감정이 흔들리는 경험이 흔치 않았습니다. 영화가 끝날 즈음에는 제가 피곤한 것이 아니라 마티와 함께 정신없이 달려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음악의 활용도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오프닝을 장식하는 Forever Young은 단순히 청춘을 노래하는 곡이 아니라, 시대적 불안 속에서도 정신만큼은 젊음을 잃지 말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음악이 마티의 탄생과 함께 흐르는 순간, 영화는 이미 그의 운명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반대로 엔딩에서 흐르는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는 영화 전체를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하는 느낌을 줍니다. 누구나 세상을 지배하고 싶어 하지만, 결국 모든 욕망은 시간 앞에서 한계를 드러낸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들려줍니다. 영화를 다 보고 엔딩 크레딧을 바라보는데, 음악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영화의 마지막 대사처럼 들렸습니다. 그 여운은 극장을 나와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감동적인 마무리는 어디서 오는가
가장 놀라웠던 것은 영화의 마지막이었습니다. 마티는 결국 세상을 정복하지 못합니다. 세계선수권 무대에도 제대로 서지 못했고, 자신의 브랜드도 꿈꾸던 모습으로 성장시키지 못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실패한 인생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마지막의 마티가 영화 속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습니다.
모든 계산과 욕심을 내려놓고 일본에서 엔도와 벌이는 친선 경기. 그 장면에서 비로소 마티가 꿈꾸던 흰 유니폼의 우아한 탁구가 완성됩니다. 더 이상 투자자도 없고, 돈도 없고, 성공을 증명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오직 탁구를 사랑하는 두 사람만이 남아 공을 주고받습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저는 이 영화가 스포츠 영화가 아니라 욕망을 내려놓는 순간을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사실을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모든 것을 얻으려 할 때는 단 한 번도 행복하지 못했던 사람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는 순간 가장 순수한 웃음을 짓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장면은 화려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았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마티 슈프림이 제 머릿속에 오래 남는 이유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주인공을 응원해야 할지 야유해야 할지 끝까지 결론을 내릴 수 없다.
- 탁구라는 스포츠의 리듬이 영화의 감정 구조와 절묘하게 맞물린다.
- 성공과 실패를 단순히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고, 그 사이의 복잡한 인간 심리를 끝까지 따라간다.
- 오프닝과 엔딩 음악이 영화 전체의 주제를 하나의 긴 여운으로 완성한다.
이 작품이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서 여러 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잘 만든 영화인가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보고 나니 왜 많은 평론가들이 이 작품을 높게 평가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연출이나 연기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영화를 본 뒤에도 관객 스스로 계속 질문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티 슈프림은 결코 편안한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계속해서 관객을 흔들고 불편하게 만듭니다. 감정이입을 허락했다가 곧바로 배신하고, 공감을 만들었다가 다시 무너뜨립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덕분에 영화는 오래 살아남습니다.
저는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스크린은 이미 꺼졌는데도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탁구공이 오가고 있었고, 마티의 마지막 표정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극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영화의 장면들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문득 '좋은 영화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안에서 계속 진행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편안한 오락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의 욕망과 모순, 그리고 그 끝에서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순수함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마티 슈프림은 분명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특별한 경험이 되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