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베놈 시리즈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 몰랐습니다. 1편부터 챙겨 보면서 에디와 베놈 특유의 티격태격하는 버디 무비(Buddy Movie) 감성에 꽤 정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완결편이라는 말을 듣고 기대를 품고 극장에 들어갔는데, 나오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화가 난 게 아니라 그냥 허탈했습니다.
영화 <베놈: 라스트 댄스> 세 팀으로 쪼개진 서사 구조, 이게 문제였습니다
영화는 주인공 그룹을 세 축으로 나눕니다. 에디 브록과 베놈, 페인 박사, 마틴 가족. 직접 겪어보니 이 구조가 관람 집중도를 심각하게 떨어뜨린다는 걸 느꼈습니다.
버디 무비란 두 명의 주인공이 함께 여정을 떠나며 감정을 쌓아가는 장르 문법입니다. 베놈 시리즈가 1편부터 유지해온 핵심 매력이 바로 이 구도였는데, 이번 작품은 그 공간을 두 팀이 더 비집고 들어오면서 정작 에디와 베놈의 감정선이 묻혀버립니다.
마틴 가족의 경우, 외계인을 보고 싶어 에어리어 51 근처까지 여행을 온 가족이라는 설정인데 서사적 필연성이 너무 약합니다. 제가 경험상 이런 역할은 감정적 완충 장치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그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에디 일행과 마주치는 방식도 "소시지 냄새를 맡고 다가간다"는 식이라 연결 고리가 너무 우연에 기댑니다.
페인 박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 번개를 맞아 오빠를 잃고 심비오트를 연구하는 박사로 살아간다는 캐릭터인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능력의 기원이나 정체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심비오트(Symbiote)란 숙주 생명체와 결합해 공생 관계를 형성하는 외계 유기체를 뜻하는데, 이 개념을 다루는 페인 박사의 서사가 미완성 상태로 남으면서 오히려 본편 완성도를 해칩니다.
이 영화에서 서사 집중도가 분산된 주요 원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에디·베놈의 감정선을 가장 먼저 다뤄야 할 완결편에서 캐릭터 축이 세 개
- 마틴 가족과의 접점이 우연에 의존해 서사적 설득력이 부족
- 페인 박사의 능력 기원이 끝까지 미설명 처리
코덱스와 널, 설정은 있었지만 활용이 아쉬웠습니다
이 영화를 두고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반응을 꽤 많이 들었는데,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설정 자체가 없는 게 아니라, 설명 방식이 거칠고 관객이 감정적으로 소화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코덱스(Codex)란 심비오트가 숙주를 죽음에서 되살리는 과정에서 숙주의 척추에 생성되는 일종의 생체 열쇠입니다. 쉽게 말해, 한 번 목숨을 심비오트 덕분에 건진 사람의 몸 안에 남는 흔적 같은 것입니다. 이 코덱스를 모으면 봉인된 절대 악 널(Knull)의 감금을 풀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영화의 핵심 갈등입니다.
널이라는 존재 자체는 원작 마블 코믹스에서도 심비오트 세계관의 최상위 빌런으로 등장합니다. 코믹스 속 널은 우주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한 암흑의 신으로, 심비오트 종족 전체를 창조한 원점 같은 캐릭터입니다. 그런 캐릭터를 가져왔는데, 영화 안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봉인된 공간에 앉아 부하에게 명령만 내리는 모습으로 소비합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데, 이 정도 설정이면 적어도 후반부에 봉인이 일부 풀리며 직접적인 위협이 시작되는 장면 정도는 있어야 했습니다. 빌런의 위압감(Menace)이란 단순히 강하다는 설명이 아니라 관객이 직접 공포를 경험해야 생기는 것인데, 끝까지 그 장면이 오지 않았습니다.
멀티버스(Multiverse)와 제노페이지(Xenophage)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멀티버스란 우리 우주와 다른 평행 우주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개념으로, 소니 유니버스는 이를 통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의 접점을 이어왔습니다. 제노페이지란 널이 배신한 심비오트를 사냥하기 위해 새로 만든 생명체로, 이번 영화의 주요 추격자 역할을 합니다. 이 두 설정이 동시에 등장하면서 영화의 세계관이 넓어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정작 서사는 더 좁아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로튼 토마토 기준으로 이 영화의 관객 점수는 평론가 점수를 크게 웃돌았는데, 그만큼 팬들은 설정의 빈틈보다 감정적인 결말에 더 집중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습니다.
톰 하디가 버텨준 마지막 감정선
서사 구조나 빌런 활용이 아쉬워도, 마지막 희생 장면에서 생각보다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에디와 베놈이 완전히 한 몸이 되는 트루 폼(True Form) 상태, 즉 두 존재가 물리적·감정적으로 완전히 합일된 폼에서 베놈이 에디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는 결말은, 전작들이 쌓아온 두 캐릭터의 관계를 마무리하는 방식으로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 장면이 작동한 이유는 결국 톰 하디입니다. 제 경험상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설정이 허술해도 배우의 감정 연기가 살아있으면 관객은 어느 정도 따라가게 됩니다. 이 영화가 완전한 혹평을 피한 것도 그 덕분이라고 봅니다.
다만 한 가지 진짜 아쉬웠던 건, 에디와 베놈이 라스베이거스 펜트하우스에서 트루 폼으로 춤을 추는 장면입니다. 트루 폼이 되면 제노페이지에게 위치가 노출된다는 걸 관객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굳이 그 선택을 하는 이유가 "라스트 댄스는 못 참지"라는 분위기 하나뿐이니 극 중 긴장감이 무너집니다. 이 한 장면이 이 영화의 서사적 약점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하면 《베놈: 라스트 댄스》는 거대한 세계관을 끌어안으려다 정작 관객이 사랑했던 두 캐릭터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한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완전히 시간 낭비라고 말하기엔 톰 하디의 연기와 마지막 이별의 감정선이 어느 정도 버텨줍니다. 베놈 시리즈를 처음 보는 분이라면 1편부터 순서대로 보시길 권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장면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더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