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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파커는 자꾸만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토니 스타크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어벤져스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한다. 학교에서는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잘 보이고 싶고, 친구들에게는 자신이 평범한 학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숨겨야 한다.
스파이더맨이 된 뒤에도 마음은 편하지 않다.
거미줄을 타고 건물 사이를 날아다닐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신이 난다. 그런데 토니에게 연락이 오지 않으면 금세 초조해진다. 자신에게 더 좋은 슈트를 주기를 기다리고, 더 큰 임무를 맡겨주기를 기대한다.
그 모습이 묘하게 귀엽다.
아직 열다섯 살이니까.
어른들이 보기에는 뉴욕을 누비는 슈퍼히어로지만 피터에게는 학교생활도 중요하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고,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다. 어벤져스와 함께 싸웠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기도 하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그런 피터를 꽤 솔직하게 보여준다.
처음부터 완성된 영웅을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한 소년이 계속 실수한다. 그리고 그 실수 속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조금씩 알아간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질문도 그래서 조금 달라졌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
그런데 피터에게는 그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게 오히려 좋았다.
사람이 성장한다고 해서 칭찬받고 싶은 마음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스파이더맨이 되고 싶은 걸까, 스파이더맨으로 인정받고 싶은 걸까
피터에게는 분명 특별한 능력이 있다.
벽을 타고, 엄청난 힘을 사용하고, 거미줄을 쏘며 뉴욕을 돌아다닌다. 하지만 능력을 얻었다고 해서 곧바로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피터는 그 차이를 아직 잘 모른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도 그랬다. 토니 스타크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들떠 있고, 어벤져스급 영웅들과 함께 싸웠다는 사실을 굉장한 경험으로 받아들인다. <홈커밍>에서도 그는 계속 토니에게 자신의 활약을 보고한다. 더 큰 임무를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실제 영화에서도 피터는 친근한 동네 영웅에 머무르기보다 어벤져스에 들어갈 자격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 마음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인정받고 싶다.
직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고, 가족에게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고, 내가 만든 것을 누군가 좋아해주기를 기다린다. SNS에 올린 사진이나 글의 반응을 괜히 몇 번씩 확인하는 것도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피터에게는 그 대상이 토니 스타크다.
토니가 자신을 인정해주면 자신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다. 반대로 토니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갑자기 작아진다.
슈트도 같은 역할을 한다.
토니가 만들어준 슈트에는 피터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기능이 들어 있다. 인공지능 캐런이 상황을 알려주고, 다양한 웹 기능이 제공되고, 추적 장치까지 달려 있다.
슈트를 입은 피터는 자신감이 넘친다.
그런데 영화는 그 자신감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계속 묻는다.
피터 자신일까.
아니면 슈트와 토니 스타크가 주는 힘일까.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피터가 슈트를 입고 신나서 이것저것 시험해보는 장면이 꽤 재미있었다. 나도 새 장난감을 받은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봤는데, 영화를 다시 떠올려보니 그 장면이 피터가 얼마나 토니가 만들어준 세계에 기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피터가 벌처를 상대하다 큰 사고를 일으키면서 토니는 슈트를 가져간다. 그리고 피터는 한순간에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확신을 잃어버린다.
그 장면이 꽤 아프게 느껴졌다.
피터에게 빼앗긴 것은 슈트만이 아니었다.
‘나도 어벤져스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마음까지 같이 무너진 것이다.
그래서 무너진 건물 잔해 아래에서 홀로 빠져나오는 장면이 중요하다.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토니도 없고, 첨단 슈트도 없다. 캐런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피터는 콘크리트 더미 아래에서 혼자 몸을 일으킨다.
그 순간만큼은 누구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다.
사진을 찍어줄 사람도 없고, 박수를 보내줄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일어난다.
이 장면에서는 이상하게 숨을 죽이고 보게 됐다. 피터가 잔해에 깔려 있는 동안에는 ‘이번에는 누가 도와주겠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오히려 더 불안했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 조금씩 잔해를 밀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제야 이 아이가 정말 스파이더맨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장면에서 피터가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스파이더맨이 될 수 있는 사람인가.’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 것보다 먼저 필요한 건 어쩌면 이런 경험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본 경험.
리즈의 아버지가 벌처였던 순간, 피터는 선택해야 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꼽으라면 홈커밍 파티 장면을 빼놓기 어렵다.
피터는 어렵게 용기를 내어 리즈를 찾아간다.
오늘만큼은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그냥 피터 파커이고 싶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여자아이와 춤추고 싶고, 멋진 옷을 입고 파티에 참석하고 싶다. 어쩌면 평범한 고등학생처럼 하루를 보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이 열린다.
리즈의 아버지다.
애드리언 툼스.
피터가 쫓고 있던 벌처였다.
순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방금 전까지 하이틴 영화처럼 흘러가던 장면이 갑자기 팽팽해진다.
피터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아버지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이 장면은 개인적으로 영화관에서 꽤 강하게 기억에 남았다. 피터와 함께 리즈의 집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만 해도 ‘이제 둘이 데이트를 하겠구나’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고 있었는데, 툼스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옆자리 관객들도 순간적으로 조용해지는 느낌이 들 만큼 장면의 공기가 확 바뀌었던 기억이 난다.
툼스라는 인물도 흥미롭다.
그는 세상을 지배하려는 거대한 악당이 아니다. 어벤져스의 전투 이후 정부와 토니 스타크 측이 외계인 잔해 처리 사업을 가져가면서 자신의 생계를 잃은 인물이다. 이후 그는 회수한 기술을 이용해 무기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다. 실제 평론에서도 벌처를 토니 스타크와 어벤져스의 뒤처리 과정에서 밀려난 노동자로 바라보는 해석이 많았다.
물론 그렇다고 범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툼스는 피터에게 묘한 거울처럼 보인다.
둘 다 자신이 더 큰 세계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피터는 어벤져스라는 세계로 올라가고 싶어 한다.
툼스는 거대한 기업과 정부가 차지한 세계에서 밀려난 뒤 자기 방식으로 힘을 만들어낸다.
한쪽은 인정받고 싶어서 위를 바라보고, 다른 한쪽은 인정받지 못한 분노를 힘으로 바꾼다.
둘 다 ‘내가 이 세계에서 어떤 사람인가’를 증명하려고 한다.
차이는 그 이후의 선택이다.
툼스는 자신의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 풀어간다.
피터는 여러 번 실패하면서도 결국 사람을 구하는 쪽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마지막 전투가 더 중요해진다.
피터에게는 더 이상 토니에게 잘 보일 이유가 없다.
어벤져스가 지켜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리즈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도 없다.
그런데도 피터는 벌처를 막으러 간다.
이때의 피터는 처음 영화에서 토니에게 계속 연락하던 소년과 조금 다르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기 때문은 아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 차이가 꽤 크다.
사람은 칭찬받고 싶어 하면서도 옳은 일을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면서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
피터가 진짜로 성장한 지점은 여기에 있다고 느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스파이더맨: 홈커밍>이라는 제목도 마지막에 가면 조금 다르게 들린다.
홈커밍은 영화 속 학교 행사이면서, 스파이더맨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돌아온다는 의미도 품고 있다. 영화는 고등학교라는 일상과 슈퍼히어로 세계를 계속 오가면서 이 두 가지 ‘귀환’을 겹쳐 놓는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돌아온다’는 말이 피터의 성장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피터는 계속 밖을 바라본다.
어벤져스에 들어가고 싶어 하고, 토니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더 강한 슈트를 갖고 싶어 한다.
자신이 아직 작은 존재라는 사실이 싫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마지막에 토니가 어벤져스 합류라는 기회를 내밀었을 때 피터는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한다. 그는 당장 거대한 무대에 올라가기보다 자신이 있는 곳에 남는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토니가 새로운 어벤져스 슈트를 제안하지만 피터가 거절하는 장면은 이 성장의 방향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 장면이 마음에 남았다.
그토록 원했던 인정이 눈앞에 있는데 한발 물러난다.
여기에는 아이러니가 있다.
인정받고 싶어서 그렇게 애쓰던 피터가, 정작 인정받을 기회를 얻은 순간 그걸 선택하지 않는다.
이 장면을 볼 때는 피터가 드디어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가 제안을 거절하는 순간 조금 의외였다. ‘그렇게 어벤져스가 되고 싶어 하더니 왜 거절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곧이어 피터가 처음보다 훨씬 편안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이제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중요한 건 ‘어벤져스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알아가는 일이었다.
물론 피터가 앞으로도 계속 인정받고 싶어 할 것이다.
좋은 일을 했다는 말을 듣고 싶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멋진 스파이더맨으로 보이고 싶을 것이다.
그 마음까지 없애버릴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런 마음을 가진 채 자기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게 더 현실적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비슷하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다.
가족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친구들에게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내가 만든 글이나 사진, 영상에 사람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기를 기다린다.
그런 마음을 완전히 버리기는 어렵다.
문제는 다른 사람의 박수가 멈추는 순간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피터는 그 순간을 경험했다.
토니가 슈트를 가져갔고, 아무도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도 그는 다시 일어났다.
그제야 스파이더맨이라는 이름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스파이더맨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동안에만 영웅인 사람이 아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
영화를 보고 난 뒤 이 질문을 다시 떠올려봤다.
아마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고,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좋게 봐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도,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피터에게는 그 답이 스파이더맨이었다.
토니가 지켜보지 않아도 움직이고, 친구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사람을 구하고, 거대한 무대에 서지 않아도 자기 몫을 해내는 사람.
그게 피터가 조금씩 찾아간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슈트를 다시 입는 피터의 모습이 처음과는 다르게 보인다.
처음의 피터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슈트를 입었다.
마지막의 피터는 아직도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적어도 왜 슈트를 입어야 하는지는 조금 알고 있다.
그 차이면 충분하다.
아직 열다섯 살이니까.
실수도 더 할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무리할 것이다.
그런데 괜찮다.
영웅이 된다는 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는 일이 아닐 테니까.
어쩌면 아무도 박수를 보내지 않는 순간에도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과정에 더 가까울 것이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 질문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