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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나오면서 저도 모르게 '러브 이즈'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분명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노래였는데, 이상하게도 후렴구가 계속 귓속에 맴돌았습니다. 보통 코미디 영화를 보고 나오면 기억나는 것은 크게 웃었던 장면들이기 마련인데, 《와일드 씽》은 조금 달랐습니다. 분명 웃기려고 만든 영화인데, 정작 시간이 지날수록 웃음보다는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한때 빛났지만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애틋함, 지나간 시대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다시 한번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절실함 같은 것들이 천천히 가슴속에 스며드는 작품이었습니다.
개봉 전부터 입소문이 심상치 않았기에 기대감도 컸습니다. '오정세가 다 했다'라는 반응이 워낙 많아서 반쯤은 과장된 이야기겠거니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저 역시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기대를 잔뜩 안고 들어갔다가 폭소보다는 묘한 여운을 안고 나오게 되는 영화. 《와일드 씽》은 제게 그런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영화 <와일드 씽> 최성군 캐릭터의 압도적 존재감
영화를 보고 나면 대부분의 관객이 같은 말을 합니다. "오정세가 다 했다." 저도 처음에는 너무 과한 찬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영화를 본 뒤에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됐습니다.
오정세가 연기한 최성군은 2000년대 초반 최고의 혼성그룹 트라이앵글에게 무려 38주 연속 2위를 내준 비운의 발라더입니다. 한때 가수를 꿈꾸며 무대 위에서 빛났지만 지금은 포수, 즉 정식 허가를 받고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설정만 놓고 보면 웃기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짠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오정세는 그 복합적인 감정을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표현해냅니다.
제가 가장 크게 웃었던 장면도 바로 최성군이 등장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PD와 작가 앞에서 섭외 제안을 받자마자 분위기 파악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은 채 느닷없이 노래를 시작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주변 관객들 사이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왔는데, 그 웃음에는 단순한 코미디 이상의 힘이 있었습니다. 뻔뻔한데 미워할 수 없고, 우스운데 이상하게 응원하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비평에서 흔히 말하는 신스틸러(scene-stealer)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주인공보다 더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장면을 가져가는 배우를 의미하는데, 최성군은 단순히 장면 몇 개를 훔쳐 가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영화 전체의 무게중심을 자기 쪽으로 완전히 끌어당겨 버립니다. 대사를 치는 방식, 눈빛의 흔들림, 호흡 하나까지 모두 절묘했습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웃기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처연한 표정을 짓는데 그 감정의 변화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코미디 연기의 핵심은 기세와 뻔뻔함, 그리고 리듬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성군은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캐릭터였습니다. 반면 트라이앵글 멤버들은 처음부터 코미디적인 톤으로 등장하다 보니 오히려 웃음이 덜 살아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진지하게 달려가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 비틀어질 때 웃음이 더 커지는데, 그런 부분이 조금만 더 살아났다면 영화 전체의 재미도 한층 올라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2000년대 가요 향수: 트라이앵글이라는 가상의 그룹이 완성도 높은 이유
《와일드 씽》에서 트라이앵글은 여성 리드 보컬 한 명과 남성 멤버 두 명으로 이루어진 혼성 그룹입니다. 자연스럽게 코요테를 떠올리게 하는 구성인데, 강동원이 댄서 겸 서브 보컬 황현우를, 엄태구가 래퍼 구상구를, 박지현이 메인 보컬 변도미를 맡았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배우들이 아이돌을 연기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스크린에서 만난 트라이앵글은 생각보다 훨씬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강동원이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나 엄태구가 랩을 하는 장면들은 단순히 흉내를 내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그 시절 음악방송에서 활동하던 그룹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러브 이즈'와 '네가 좋아'는 예상 이상으로 귀에 착 감기는 곡들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공개된 뮤직비디오가 화제를 모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다소 홍보성 이벤트 정도로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왜 사람들이 반응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됐습니다. 실제로 이런 그룹이 존재했다면 음반을 사고 팬클럽에 가입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2000년대 초반 특유의 분위기를 재현한 디테일이었습니다. 화려한 조명과 번쩍이는 무대 세트, 지금 보면 촌스럽지만 이상하게 정겨운 의상들, 과하게 힘이 들어간 안무와 카메라 워킹까지 그 시절 음악방송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만한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학창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TV 앞에 앉아 음악 프로그램을 기다리던 시간, 친구들과 가수 이야기를 하며 CD를 돌려 듣던 기억, 벨소리와 컬러링을 바꾸기 위해 용돈을 아껴 쓰던 순간들까지 함께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와일드 씽》이 진짜로 건드리는 것은 웃음이 아니라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의 추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미디 영화의 구조적 약점: 리듬과 속도감에 대한 두 가지 시선
《와일드 씽》을 바라보는 시선은 꽤 엇갈릴 것 같습니다. 정말 재미있었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기대했던 것만큼 크게 웃기지는 않았다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감상에 조금 더 가까웠습니다.
코미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템포와 리듬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이 터진 뒤에는 재빨리 다음 웃음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와일드 씽》은 종종 그 타이밍을 놓칩니다. 웃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도 거기서 한 박자 더 머물러 버리면서 힘이 빠지는 순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놀이터 오디션 장면에서 모래바람이 일어나는 연출은 아이디어 자체는 정말 좋았습니다. 극장 안에서도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지만,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한 번 더 밀어붙였더라면 훨씬 큰 웃음으로 이어질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좋은 재료를 가지고도 끝까지 끌어올리지 못한 장면들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아쉬움이 쌓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을 순수한 코미디 영화의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것도 공정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이 영화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웃음 그 자체보다 잊혀진 사람들의 재도전과 지나간 시대에 대한 애정에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악 코미디와 향수물이 뒤섞인 혼합 장르라고 본다면 나름의 매력과 진심이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는 동안 여러 번 웃음보다 뭉클함이 먼저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한때는 누구보다 찬란했지만 지금은 세상에서 잊혀진 사람들이 다시 한번 무대에 서기 위해 용기를 내는 모습은 생각보다 진심 어린 울림을 전해줍니다. 화려한 성공담이라기보다는 늦었지만 다시 시작해 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의외로 따뜻한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남습니다. 《와일드 씽》은 웃기려고 만든 영화일까, 아니면 지나간 시절에 바치는 헌사일까.
제 경험으로는 두 가지를 모두 잡으려다가 완벽하게 어느 한쪽에 도달하지는 못한 작품에 가깝습니다. 《극한직업》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웃기기를 기대한다면 다소 아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가요계를 기억하는 사람들, 그리고 한때 빛났지만 세월 속에 잊혀진 사람들의 재도전에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예상보다 훨씬 깊은 여운을 얻게 될지도 모릅니다.
결말 역시 크게 놀라울 것은 없습니다. 어떻게 끝날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과정이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배우들의 호흡과 음악이 끝까지 관객을 붙잡아 주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오정세가 만들어낸 최성군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강렬해서,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 역시 그의 모습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점수를 매긴다면 C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아주 높은 곳까지 치솟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점은 대부분 오정세가 만들어 냅니다. 다만 영화 전체의 평균적인 완성도가 그 높은 순간들을 끝까지 따라가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일드 씽》은 쉽게 잊히지 않는 영화였습니다. 극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어느새 다시 '러브 이즈'를 흥얼거리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으니까요.
만약 《와일드 씽》이 궁금하다면 영화를 보기 전에 뮤직비디오부터 먼저 찾아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단 한 곡, '러브 이즈'만 들어봐도 아마 이 영화가 자신의 취향에 맞을지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저처럼 영화가 끝난 뒤에도 며칠 동안 무심코 그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된다면, 아마 그때 비로소 《와일드 씽》이 남긴 진짜 여운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