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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에 다시 출근하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아침 알람을 맞추고 셔츠를 다려 입는다. 오래된 서류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한때 매일 오가던 출근길을 다시 걷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낯설다. 옆자리에 앉은 직원은 나보다 서른 살, 마흔 살이나 어릴지도 모른다.
영화 <인턴>에서 벤 휘터커가 선택한 삶이 바로 그랬다.
벤은 이미 은퇴한 70세 남자다. 아내와 사별했고, 오랜 직장생활을 마친 뒤 골프도 치고 여행도 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겉으로 보면 부족할 것 없는 노년이다.
그런데 시간이 많아질수록 하루가 길어졌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편한 일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조금씩 자신의 자리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도 찾아온다.
그러던 어느 날 벤은 시니어 인턴 모집 공고를 발견한다.
70세에 인턴이라니.
조금 웃기기도 하다. 동시에 이상하게 마음이 끌린다.
수십 년 동안 직장생활을 해온 사람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다. 게다가 그가 들어간 곳은 젊은 사람들이 만든 온라인 패션 기업이다.
벤에게 최신 기술이나 젊은 감각은 없다.
대신 오랜 세월 사람과 일을 겪으며 몸에 밴 태도가 있다.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법, 시간을 지키는 법, 상대를 배려하는 법. 이런 것들은 이력서에 한 줄로 적기 어렵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꽤 큰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 경험이 젊은 CEO 줄스 오스틴의 삶에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스며든다.
70세 벤, 은퇴한 사람에서 다시 필요한 사람으로
벤의 첫 출근 장면을 보면 웃음이 난다.
젊은 직원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사무실 한가운데 양복을 차려입은 70세 남자가 앉아 있다. 스마트폰과 SNS, 온라인 쇼핑이 익숙한 사람들 사이에서 벤은 다른 시대에서 건너온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금세 분위기가 달라진다.
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젊은 직원들과 어울리고 회사 분위기를 익힌다. 복사나 심부름 같은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서도 주변 사람을 유심히 바라본다.
누군가 곤란해하면 도와주고,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해주고,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사람에게 조용히 곁을 내준다.
대단한 능력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라는 공간에서 이런 태도는 의외로 오래 남는다.
벤은 어느 순간부터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어간다.
이 부분을 보면서 나이라는 숫자가 사람의 현재를 전부 설명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0세라는 숫자만 보면 은퇴한 사람이다. 하지만 벤이 실제로 보여주는 모습은 ‘은퇴한 사람’이라는 한마디로 묶기 어렵다.
그에게 다시 생긴 것은 직업만이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 갈 곳이 있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고, 자신을 기다리는 일이 생겼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바쁜 일정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아직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감각.
벤이 일터로 돌아가면서 되찾은 것도 어쩌면 이것이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그가 줄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기 위해 회사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벤 역시 그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배운다. 젊은 직원들과 일하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자신에게 낯설었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젊은 사람에게 지혜를 전하는 단순한 세대 이야기가 아니었다.
서로에게 배울 것이 있는 두 사람이 만난 이야기였다.
젊은 CEO 줄스, 성공한 사람의 가장 외로운 자리
줄스 오스틴은 벤과 정반대에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젊고, 열정적이고, 엄청나게 바쁘다.
직접 만든 온라인 쇼핑몰은 빠르게 성장했고 직원도 많다. 하루에도 수십 가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회사에서 줄스의 말 한마디는 곧바로 누군가의 업무가 된다.
누가 봐도 성공한 사람이다.
그런데 줄스의 얼굴에는 좀처럼 여유가 없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의 기대를 받고, 집에서는 남편과 딸이 그녀를 기다린다. 회사가 커지면서 외부 CEO를 영입하는 문제까지 생긴다.
자신이 직접 만든 회사를 다른 사람이 운영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줄스에게 꽤 큰 불안이다.
이 부분이 의외로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성공한 뒤에는 걱정이 사라질 것 같지만, 막상 높은 곳에 올라가면 지켜야 할 것도 많아진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잃을까 두렵고, 주변의 기대에 맞추느라 정작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줄어든다.
그런 줄스에게 벤은 묘하게 편한 사람이다.
벤은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CEO라는 이유로 무조건 맞장구를 치지도 않는다.
필요할 때 이야기를 들어주고, 오래 살아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을 건넨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으로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준다.
줄스에게 벤은 어느 순간부터 인턴 이상의 존재가 된다.
벤 역시 줄스를 만나면서 다시 세상 안으로 들어간다.
이 관계가 좋았던 이유는 두 사람이 서로의 빈자리를 억지로 채우지 않기 때문이다.
벤은 줄스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줄스 역시 벤을 과거에 머물러 있는 노인으로 대하지 않는다.
한 사람은 경험을 가져왔고, 다른 한 사람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줬다.
세대가 다르다는 사실이 오히려 두 사람을 연결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나이는 경험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을까
<인턴>을 보고 오래 기억에 남은 건 벤의 70세라는 숫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숫자가 점점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고, 낯선 사람들과 일하고, 모르는 기술을 배우고, 젊은 직원들과 농담을 나눈다. 실수도 한다.
그 모습이 좋았다.
새로운 시작은 원래 서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그 과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출발을 미루는 이유를 쉽게 만들어낸다.
‘이 나이에 뭘 새로 시작해.’
‘지금 와서 시작하기에는 늦었지.’
‘젊었을 때 했어야 했는데.’
이런 생각은 특정한 나이에만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20대에는 졸업이 늦었다고 생각하고, 30대에는 이미 자리를 잡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40대가 되면 안정이 중요해지고, 50대가 되면 다시 시작한다는 말이 점점 낯설어진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시작할 기회보다 포기할 이유를 먼저 찾게 된다.
벤은 그 흐름에서 한 발짝 벗어난 사람이다.
그의 새로운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다시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낯선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
그 작은 움직임이 벤의 하루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든다.
줄스도 벤을 만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회사를 지키는 일과 가족을 지키는 일 사이에서 흔들리고, CEO라는 역할 뒤에 감춰두었던 자신의 마음도 마주하게 된다.
두 사람 모두 처음과 같은 사람으로 영화의 마지막을 맞이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말하는 ‘새로운 시작’은 직장을 다시 구하는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살면서 어느 순간부터 포기했던 것,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관계, 이제는 늦었다고 단정했던 가능성.
그중 하나를 다시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다.
인생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정말 늦은 때가 있을까.
영화 속 벤을 보고 있으면 쉽게 대답하고 싶어진다.
70세에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질문이 조금 달라진다.
나이를 핑계로 삼기 전에, 우리는 이미 마음속에서 몇 번이나 새로운 시작을 포기했던 걸까.
벤은 70세에 다시 출근했다.
양복을 입고 서류가방을 들고 낯선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움직인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것은 젊음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직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마음을 너무 빨리 접지 않는 것.
어쩌면 새로운 시작의 가장 어려운 순간은 첫걸음을 떼는 때가 아니라,
‘나에게도 아직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고 스스로 허락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몇 살이 되어서야 스스로에게 그 허락을 내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