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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견은 대체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 영화 <주토피아 2>

mynote45009 2026. 8. 29. 20:02

목차


     

    속편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움보다 걱정이 먼저 들었던 영화가 있다.

     

    《주토피아 2》가 그랬다.

     

    2016년에 봤던 1편을 워낙 좋아했다.

     

    주디와 닉이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도 좋았고, 포식자와 피식자라는 구분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쉽게 다른 존재를 판단하는지를 보여준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영화가 끝났을 때 이야기가 꽤 깔끔하게 마무리됐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9년이 지나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하니 조금 걱정됐다.

     

    잘 만든 영화일수록 속편이 원작의 이름만 빌린 작품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그런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갔다.

     

    익숙한 음악과 주토피아의 풍경이 화면에 등장하고 닉과 주디가 다시 나타나는 순간,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9년 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를 우연히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특히 닉이 특유의 표정과 말투로 등장하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래, 이게 내가 좋아했던 닉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속편에 대한 걱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1편과 조금 다른 질문이 남았다.

     

    1편을 보고 나서는 “나는 다른 사람을 편견 없이 보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했다면, 2편을 보고 나서는 한 단계 더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그 편견은 대체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그리고 그 질문은 주토피아라는 도시 자체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주토피아는 정말 모두를 위한 도시였을까

     

    주토피아를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캐릭터만큼이나 도시 자체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동물들이 사람처럼 옷을 입고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설정은 귀엽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 정교하다.

     

    몸집이 큰 동물과 작은 동물이 살아가는 공간이 다르고, 사막처럼 뜨거운 지역과 눈으로 뒤덮인 공간이 한 도시에 공존한다. 화면 구석을 지나가는 동물 하나까지도 그 종의 특징에 맞게 움직인다.

     

    그래서 1편을 볼 때는 주토피아라는 도시를 한 번쯤 실제로 여행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이번에는 그 도시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1편에서는 서로 다른 동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라는 사실 자체가 주토피아의 매력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 안에도 차별과 편견은 있었다.

     

    하지만 2편에서는 그보다 더 오래된 문제가 드러난다.

     

    애초에 이 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그 안에 들어올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는 것.

     

    오랫동안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던 파충류와 게리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주토피아의 과거가 드러난다. 파충류가 도시에서 밀려난 이유와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잘못된 이야기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었다는 설정이다. 디즈니는 게리를 100년 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뱀으로 소개하며, 닉과 주디가 그와 함께 도시의 오래된 미스터리를 파헤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 지점이 1편과 가장 달라 보였다.

     

    1편의 편견은 주디와 닉 같은 개인이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가까웠다.

     

    토끼는 약하다.

     

    여우는 교활하다.

     

    포식자는 위험하다.

     

    이런 생각들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2편에서는 질문이 한 단계 더 깊어진다.

     

    그런 생각은 누가 만들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도시 전체가 그것을 믿게 됐을까.

     

    누군가를 위험한 존재라고 부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이야기가 반복되고, 기록되고,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믿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개인의 생각이 사회의 상식이 된다.

     

    그때부터 편견은 사람 한 명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도시의 역사와 제도, 사람들이 공유하는 기억 속에 남는다.

     

    그래서 게리의 이야기가 단순히 새로운 파충류 캐릭터가 등장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낯선 캐릭터였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를 낯설게 만든 것이 게리의 모습인지, 아니면 그를 바라보는 주토피아의 시선인지 생각하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한동안 ‘내가 누군가를 처음 봤을 때도 이런 식으로 판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처음 만난 사람의 말투와 옷차림만 보고 성격까지 짐작했다가, 나중에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냥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애초에 내가 가진 기준이 어디서 생겼는지까지 돌아보게 됐다.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출신이나 외모, 직업, 말투 같은 몇 가지 단서만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일.

     

    문제는 그 판단이 반복될 때다.

     

    여러 사람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같은 이미지를 공유하면 어느 순간 그것은 개인의 편견이 아니라 ‘원래 그런 것’처럼 굳어버린다.

     

    《주토피아 2》가 흥미로운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편견을 없애자는 이야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편견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실제 평론에서도 속편이 첫 번째 영화의 개인적 편견이라는 주제를 넘어 역사적 배제와 잘못된 공공 서사, 소외된 집단의 기억 문제까지 확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영화가 이 문제를 아주 깊게 파고드는 것은 아니다.

     

    어린 관객도 함께 보는 애니메이션인 만큼 추격전과 유머, 캐릭터의 매력을 계속 끼워 넣는다.

     

    그래서 역사적 배제라는 무거운 소재가 조금 단순하게 정리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정도의 무게가 이 영화에는 잘 맞는다고 느꼈다.

     

    아이에게는 “남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로 보이고, 어른에게는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정말 사실일까?”라는 질문으로 남을 수 있으니까.

     

    닉과 주디, 서로를 믿는다는 건 같은 생각을 하는 걸까

     

    이번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역시 닉과 주디였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

     

    관객에게는 9년 만의 재회지만, 영화 속 닉과 주디에게는 거의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1편의 사건 직후, 두 사람은 이제 막 경찰 파트너로 함께 일하기 시작한 상태다. 제작진 역시 이번 작품의 핵심을 “두 사람이 장기적으로 정말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로 설명한다.

     

    그래서 이번 두 사람은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이미 서로를 잘 안다.

     

    그런데 바로 그 점 때문에 더 자주 부딪힌다.

     

    처음 만난 사람끼리라면 그냥 지나갈 말도 오래 알고 지낸 사람에게는 크게 들릴 때가 있다.

     

    상대의 성격과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서운함도 더 커진다.

     

    닉과 주디가 딱 그렇다.

     

    주디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이다.

     

    닉은 조금 더 현실적이고 신중하다.

     

    주디에게 중요한 것이 정의라면 닉에게는 때로 자신의 안전과 관계를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

     

    실제 평론에서도 이 두 사람의 차이를 주디의 정의에 대한 집착과 닉의 생존·안정에 대한 태도의 충돌로 분석한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서 두 사람의 갈등은 1편보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서로를 믿지 않아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믿기 때문에 더 솔직하게 부딪히는 것이다.

     

    이 차이가 꽤 중요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흔히 좋은 관계라면 생각이 잘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래 함께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판단이 같을 수는 없다.

     

    오히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닉과 주디가 이번 영화에서 배워가는 것도 그런 부분처럼 보였다.

     

    상대방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진 채로도 함께 갈 방법을 찾는 것.

     

    이건 꽤 어른스러운 관계의 변화다.

     

    특히 닉의 캐릭터가 좋았다.

     

    1편에서 닉은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여우는 어차피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사람들이 생각한다면 굳이 그 기대를 깨려고 애쓸 이유도 없다고 여겼다.

     

    그런 닉이 이번에는 다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괜히 나섰다가 모든 것을 잃는 것은 아닐까.

     

    그런 닉의 현실적인 태도가 주디의 이상주의와 부딪힌다.

     

    두 사람 중 누가 맞다고 단순하게 말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디가 없으면 닉은 너무 쉽게 포기할 수 있고, 닉이 없으면 주디는 자신의 신념만 믿고 너무 멀리 갈 수 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생기는 균형이다.

     

    이번 영화에서 그 균형이 흔들린다.

     

    그런데 흔들린다고 해서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시 맞춰가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왜 파트너가 되었는지가 선명해진다.

     

    극장에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날카롭게 말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나면서도 묘하게 불편했다. 연인이나 친구 사이에서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말다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도 가까운 사람과 의견이 다를 때는 상대가 틀려서 화가 나는 것보다, ‘내가 이렇게까지 설명했는데 왜 내 마음을 몰라주지?’라는 서운함이 더 오래 남았던 적이 있다. 닉과 주디를 보면서 그때의 감정이 떠올랐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히 ‘우정이 깊어졌다’는 말로는 부족하게 느껴졌다.

     

    서로를 이해하는 단계에서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게리도 이 관계를 바라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토피아 사회에서 위험한 존재로 여겨졌던 게리는 실제 모습과 사람들이 알고 있던 이미지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1편에서 닉과 주디가 서로에 대해 가졌던 선입견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설정이다.

     

    다만 이번에는 질문이 하나 더 붙는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다면, 그 잘못된 이야기는 누가 만들어냈을까?”

     

    이 질문 때문에 2편이 단순한 반복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9년 만에 다시 만난 주토피아, 결국 질문은 나에게 돌아왔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의외로 간단했다.

     

    “다음 이야기도 보고 싶다.”

     

    속편에 대한 평가에서 이보다 솔직한 기준도 없을 것 같다.

     

    물론 아쉬운 부분은 있다.

     

    새로운 사회와 역사에 관한 설정이 흥미로운 만큼 그 배경을 조금 더 깊게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건이 어떻게 기억되고 왜곡됐는지까지 자세하게 다뤘다면 영화의 주제가 훨씬 묵직해졌을 것이다.

     

    실제로 평론가들의 반응도 갈린다.

     

    어떤 평론은 1편보다 새로운 것이 많지 않다고 지적하지만, 다른 평론들은 주토피아의 세계를 넓히면서도 닉과 주디의 관계를 중심에 둔 점을 높게 평가한다.

     

    나는 이 정도의 아쉬움은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쪽에 가깝다고 느꼈다.

     

    주토피아라는 도시는 아직 보여주지 않은 공간이 많다.

     

    이번 영화에서도 이전에 등장하지 않았던 지역과 존재들이 추가되면서 세계가 넓어진다. Variety 역시 주토피아가 서로 다른 구역과 동물들이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확장성을 가진 세계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1편과 2편을 이어서 보고 나니 이 시리즈가 던지는 질문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1편은 “나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묻는다.

     

    2편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시선은 어디에서 만들어졌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닉과 주디의 관계는 또 다른 질문을 남긴다.

     

    “서로를 믿는다는 것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생각을 가진 채 함께 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후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새로운 동물이나 화려해진 도시만은 아니었다.

     

    9년 전 관객으로서 처음 만났던 닉과 주디가 이제는 서로의 차이를 알고도 함께 가는 관계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관계가 주토피아라는 세계와도 닮아 있다.

     

    서로 다른 존재가 한 도시에 산다는 것은 모두가 똑같아지는 일이 아니다.

     

    차이가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같이 살아갈 것인가를 계속 배우는 일에 가깝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영화 제목인 ‘주토피아’도 조금 다르게 들렸다.

     

    완벽하게 평등한 이상향을 뜻하는 이름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끊임없이 부딪히면서도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는 공간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와 휴대폰을 확인하다가도 이상하게 영화 속 질문이 계속 남아 있었다.

     

    뉴스나 인터넷에서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때,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린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일 거야.’

     

    그 짧은 판단이 어쩌면 영화 속 주토피아가 오랫동안 반복해온 편견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에는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됐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그 사람의 모습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설명인지.

     

    《주토피아 2》가 내게 남긴 가장 큰 질문도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지금 누군가를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1편을 보고 나서도 비슷한 질문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질문의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

     

    누군가를 편견 없이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보이게 되었는지까지 살펴봐야 할 때가 있다.

     

    사람의 생각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이 있고, 사회가 반복해서 들려준 이야기가 있고,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과거가 있다.

    그래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주토피아 2》가 1편만큼 새롭고 날카로운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몇몇 설정은 더 깊게 파고들 여지가 있었고, 익숙한 공식이 다시 등장하는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9년을 기다려 다시 만난 주토피아는 적어도 같은 질문을 반복하지는 않았다.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판단하지 말자.”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 다름을 판단하게 만든 이야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질문이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나는 누군가를 제대로 보고 있는가.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 생각이 계속 남았다.

     

    아마 그것만으로도 9년을 기다려 다시 만난 속편은 충분히 제 몫을 한 것 같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dYaoH2Oii5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