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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키드: 포 굿> 후기 (감정, 캐릭터, 분할)

flowerpiggy 2026. 5. 25. 09:08

목차


     

    1년을 기다린 속편이 전편의 절반도 못 미친다는 말은 영화 팬들 사이에서 종종 들을 수 있지만, 막상 그 감정을 직접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위키드: 포 굿》을 보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 제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전편 《위키드》가 남긴 감정의 폭발력은 예상보다 훨씬 컸고, 특히 엔딩을 장식했던 ‘Defying Gravity’의 전율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을 기다리는 동안 기대는 자연스럽게 커졌고, 예고편과 스틸컷이 공개될 때마다 다시 한 번 오즈의 세계로 돌아갈 생각에 설렜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감동보다 아쉬움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영화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완성도 자체는 여전히 높고 배우들의 연기 역시 훌륭합니다. 다만 전편이 보여줬던 감정의 밀도와 서사의 응집력을 경험한 관객이라면, 이번 작품에서 느끼게 되는 허전함 역시 쉽게 외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영화 <위키드: 포 굿> 서사 구조가 흔들리면 감정도 흔들린다

     

    영화는 시작부터 각 인물들이 처한 비극과 고립을 병렬적으로 보여주며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엘파바는 여전히 체제에 맞서 싸우고 있지만 그녀의 외침은 민중에게 닿지 못하고, 글린다는 에메랄드 시티의 화려한 무대 위에서 웃고 있으면서도 사실상 권력의 상징물처럼 소비되고 있습니다. 설정 자체는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여기서 영화가 선택한 방식은 흔히 말하는 내러티브 아크(Narrative Arc), 즉 인물이 사건을 거치며 변화하고 성장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 엘파바의 변화는 생각보다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전편에서 엘파바는 단순히 세상에 분노하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차별, 존경하던 딜러먼드 교수의 탄압, 그리고 글린다와의 관계를 통해 얻게 된 자기 수용까지 수많은 감정이 차곡차곡 쌓이며 결국 하나의 거대한 폭발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Defying Gravity’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인생 전체가 응축된 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반면 이번 작품의 엘파바는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이미 감정의 정점에 올라와 있습니다. 문제는 그 상태에서 더 이상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그녀가 왜 분노하는지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 감정이 어떤 과정을 거쳐 더 깊어지는지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저 역시 영화를 보면서 엘파바를 이해하는 것과 그녀에게 몰입하는 것이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여러 번 느꼈습니다. 캐릭터가 계속 화가 나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감정적 긴장감이 유지되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야기의 중심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뮤지컬 영화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다이에게틱 뮤직(Diegetic Music) 역시 비슷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다이에게틱 뮤직은 극 중 인물들도 실제로 인식하는 음악을 의미하는데, 이 방식이 성공적으로 작동하면 음악과 감정, 그리고 서사가 완벽하게 결합됩니다. 전편의 ‘Defying Gravity’는 바로 그런 사례였습니다.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인물의 감정과 관객의 감정이 정확히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 새롭게 추가된 곡들은 분명 완성도는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전율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습니다. 노래가 끝난 뒤 남는 감정보다 “이 장면이 왜 이렇게 길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음악이 서사를 밀어 올리기보다는 러닝타임을 채우는 역할처럼 느껴졌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캐릭터: 글린다가 빛날수록 엘파바가 희미해졌다

     

    이번 영화를 보며 가장 의외였던 부분은 사실상 글린다가 진짜 주인공처럼 느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러닝타임만 봐도 그렇고, 서사적 변화의 폭을 봐도 그렇습니다. 《포 굿》은 엘파바의 혁명 이야기라기보다 글린다의 양심과 선택에 관한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화려한 미소 뒤에 불안과 죄책감을 감추고 있는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했고, 특히 체제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의 복잡한 심리를 설득력 있게 전달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제 감정이 크게 흔들린 장면들도 대부분 글린다가 중심에 있는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녀가 침묵하는 장면, 망설이는 장면,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들은 생각보다 훨씬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글린다는 이 작품에서 선(善)이란 무엇인가를 가장 진지하게 고민하는 인물입니다. 체제에 순응하면서도 선할 수 있는가, 저항하는 사람이 반드시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영화는 예상보다 복잡한 윤리적 딜레마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일부 관객들이 “이 영화는 글린다만 살아 있다”고 평가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습니다. 다만 저는 이것이 단순한 실패라기보다 영화가 의도적으로 시선을 이동시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엘파바가 상대적으로 희미해졌다는 것입니다.

     

    특히 피에로와 관련된 관계 서사는 꽤 아쉬웠습니다. 전편에서 쌓아 올린 감정선이 상당히 중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에서는 너무 쉽게 정리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그리고 그 관계가 피에로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충분히 보여주지 못합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여러 번 “여기서 조금만 더 감정을 쌓아줬다면 훨씬 설득력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이 느껴야 할 죄책감, 상실감, 배신감이 예상보다 가볍게 지나가면서 인물들 사이의 연결고리도 함께 약해진 느낌이었습니다.

     

    시각적인 변화 역시 호불호가 갈릴 요소였습니다. 전편이 보여줬던 선명한 핑크와 에메랄드 그린은 마치 동화책을 펼쳐 놓은 듯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세피아톤과 푸른빛이 강조된 컬러 그레이딩(Color Grading)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물론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비극적이고 무겁게 만들려는 의도는 이해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편이 가졌던 환상성과 생동감이 크게 줄어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같은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전혀 다른 작품을 보는 듯한 거리감이 생겼고, 그 낙차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습니다.

     

    분할 전략이 낳은 구조적 숙명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아쉬움을 연출력의 문제로만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오히려 구조적인 한계가 더 크게 보였습니다. 전편이 세계관 빌딩(World Building)의 거의 모든 재미를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오즈의 규칙을 배우고, 인물들의 관계를 이해하고, 새로운 세계에 적응해 가는 과정 자체가 전편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반면 후편은 이미 구축된 세계 안에서 갈등을 정리하고 결말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설명보다 해소가 많아질 수밖에 없고, 발견의 즐거움보다는 정리의 의무가 커집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이 상대적으로 밋밋하게 느껴지는 것은 존 추 감독의 역량 부족이라기보다 두 편으로 나뉜 구조 자체가 가진 숙명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대형 프랜차이즈나 뮤지컬을 여러 편으로 나누는 전략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흥행 측면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서사의 균형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위키드》 역시 그 함정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1편이 압도적으로 강렬했던 만큼 2편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후반부에는 분명 매력적인 순간들이 존재합니다. 피에로의 희생과 보크의 비극은 생각보다 깊은 감정을 남겼고, 여러 서브플롯이 하나로 모이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비로소 힘을 얻습니다. 특히 마지막 ‘For Good’ 시퀀스는 이 작품이 왜 존재해야 했는지를 설명하는 장면처럼 느껴졌습니다. 뮤지컬 극적 구조(Dramatic Structure) 측면에서도 음악과 감정, 관계의 정리가 아름답게 맞물리며 관객의 마음을 조용히 두드립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을 때 저는 전편의 폭발적인 카타르시스와는 전혀 다른 감정을 느꼈습니다. 심장을 강하게 때리는 감동이 아니라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과 작별 인사를 나누는 듯한 먹먹함에 가까웠습니다. 눈물이 터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결국 《위키드: 포 굿》은 독립적인 걸작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의 후반부에 가깝습니다. 전편과 함께 볼 때 비로소 의미가 완성되는 작품이며, 두 편을 연달아 떠올릴 때 가장 큰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제가 가장 강하게 느낀 것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위키드》는 처음부터 두 편이 아니라 한 편의 긴 영화였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전작을 사랑했던 관객이라면 충분히 관람할 가치가 있습니다. 다만 전편이 선사했던 압도적인 전율을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간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기대치를 조금 내려놓고, 거대한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읽는다는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마지막 ‘For Good’이 남기는 조용하고 깊은 여운을 훨씬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YKdCW44yCU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