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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이 시리즈가 다시 저를 설레게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린 시절 비디오로 처음 접했던 쥬라기 공원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고,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그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라는 기대를 품곤 했습니다. 특히 이번 작품은 비주얼리스트로 정평 난 감독에 쟁쟁한 각본가 조합, 거기다 스칼렛 요한슨까지 합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기대치를 상당히 끌어올렸습니다. 예고편이 공개될 때마다 화면을 멈춰가며 장면을 분석했고, 오랜만에 극장에서 반드시 봐야 할 블록버스터가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상영관의 불이 켜지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 그 기대가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실망감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영화가 가진 가능성과 결과물 사이의 간극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영화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비주얼은 살아있지만, 연출의 한계도 뚜렷
제가 직접 극장에서 관람하면서 가장 먼저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은 역시 비주얼이었습니다. 거대한 공룡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인간이 그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은 확실히 값어치를 했습니다. 가렛 에드워즈 감독 특유의 연출 방식은 여전히 강력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거대한 생명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시점을 통해 그 크기와 위압감을 체감하게 만드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장면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특히 케찰코아틀루스 시퀀스 후반부에서 한 인물이 순식간에 희생되는 장면은 이번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공룡이 다시 자연재해 같은 존재로 느껴졌고, 관객석에서도 긴장감이 확연히 올라가는 것이 체감됐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연출 방식 자체를 뜯어보면 영화가 기대만큼의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점점 선명해집니다. 일반적인 점프 스케어는 관객을 순간적으로 놀라게 만드는 데 집중하지만, 가렛 에드워즈는 오히려 멀리서 위협을 관찰하게 만드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화면 중앙에 인물을 두고, 관객이 위험이 다가오는 과정을 지켜보게 만드는 것이죠. 이 방식은 제대로 작동하면 엄청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문제는 그 긴장감이 캐릭터에 대한 감정 이입을 전제로 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아쉬움도 바로 여기 있었습니다. 위협받는 인물에게 마음이 가지 않으니, 공룡이 아무리 가까이 다가와도 긴장이 쌓이지 않았습니다. "저 사람이 살아야 하는 이유"가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위기만 반복되니, 연출이 공중에 붕 떠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분명 화면은 거대했고 음향도 훌륭했지만, 감정이 따라가지 못하니 결과적으로 장면의 무게가 반감됐습니다.
실제로 블록버스터 흥행의 지표 중 하나로 활용되는 CinemaScore(시네마스코어)는 개봉 당일 관객 반응을 A~F로 평가하는 미국의 영화 평점 시스템인데, 시리즈 전작들이 대체로 B+ 이상의 평가를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 역시 이전만 못한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숫자 하나만으로 영화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제가 극장에서 느꼈던 미묘한 실망감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캐릭터 설계 실패가 불러온 몰입 붕괴
이번 영화에서 저를 가장 피곤하게 만든 존재는 공룡이 아니라 인간이었습니다. 사실 공룡 영화에서 관객은 인간을 통해 상황에 몰입하고 공포를 체험합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그 가장 기본적인 연결고리가 무너져 있었습니다. 특히 주인공 조라 팀과 별개로 등장하는 가족 파티는 등장하는 순간부터 납득이 어려웠습니다. 모사우루스가 서식하는 위험한 해협을 소형 요트로 건너겠다는 아버지의 선택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거기에 딸들과 딸의 남자친구까지 함께 데려가는 설정은 더욱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왜 굳이?"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인물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관객은 보통 인물의 결점과 욕망을 확인한 뒤, 그가 시련을 통해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감정적 만족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이 가족들은 그런 과정이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위험한 선택을 하고, 위기를 겪고, 살아남지만 정작 내면적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후반부에 가서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프로태그니스트 쉴드(protagonist shield)가 지나치게 노골적이라는 점입니다. 공룡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오고, 주변 인물들은 쉽게 희생되는데 정작 주요 인물들은 기적적으로 살아남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같은 패턴이 계속 이어지자 공룡이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이벤트 장치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긴장감이 유지되려면 관객이 "정말 위험할 수도 있다"고 믿어야 하는데, 영화는 그 믿음을 스스로 무너뜨립니다.
관람 중 어느 순간에는 진심으로 "제발 한 명만 잡아먹어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잔인함을 원해서가 아니라, 그래야 이야기에 최소한의 긴장감이라도 생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관객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 이미 서사는 상당 부분 힘을 잃은 상태라고 봅니다.
이번 작품의 핵심 위협으로 등장하는 혼종 공룡 디렉스 역시 아쉬움이 컸습니다. 과거 시리즈의 혼종 공룡들은 단순히 강한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유전자 조작이라는 인간의 오만함을 상징하는 존재였고, 각각 뚜렷한 능력과 서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디렉스는 크고 기괴한 외형을 제외하면 존재 이유가 희미합니다. 왜 만들어졌는지, 무엇을 상징하는지, 시리즈의 주제와 어떤 연결고리를 갖는지가 끝내 명확해지지 않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드러난 캐릭터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가족 파티의 행동 동기가 납득되지 않아 초반부터 감정 이입 실패
- 캐릭터 아크 없이 위기를 겪어도 인물이 변화하지 않음
- 프로태그니스트 쉴드가 과도하게 작동해 공룡의 위협이 희화화
- 디렉스의 설정이 시리즈의 주제 의식과 연결되지 않음
정체성 혼란이 시리즈의 진짜 문제입니다
제가 이 시리즈에 계속 돌아오는 이유는 사실 단순합니다.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원작 영화인 Jurassic Park 때문입니다. 그 영화는 단순한 공룡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과학 기술을 통해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함, 그리고 그 통제가 무너졌을 때 찾아오는 공포를 다룬 SF 스릴러였습니다. 공룡은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그래서 티라노사우루스가 등장하는 단 한 장면조차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선 의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반면 최근의 쥬라기 월드 시리즈는 점점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번 작품 역시 소프트 리부트(soft reboot)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기존 세계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인물과 이야기를 도입하는 방식인데, 원래는 기존 팬과 신규 관객을 모두 잡기 위한 전략입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 중간 어디쯤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래된 팬들에게는 원작의 철학과 긴장감을 충분히 계승하지 못했고, 새로운 관객들에게는 독자적인 매력을 보여주지도 못했습니다.
특히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인터뷰에서 처음 받은 시나리오에는 '쥬라기 월드'라는 제목조차 없었다고 언급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 영화를 보며 느꼈던 위화감의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분명 공룡은 등장하는데, 정작 '쥬라기' 시리즈 특유의 감정은 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과감하게 하드 리부트로 방향을 틀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최소한 지금처럼 시리즈의 유산과 새로운 출발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흔들리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결국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뛰어난 비주얼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지탱해야 할 캐릭터와 서사 구조가 무너지면서 블록버스터로서의 힘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작품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악명 높았던 도미니언보다도 더 아쉬웠습니다. 적어도 도미니언은 무엇을 하려는 영화인지는 보였지만, 이번 작품은 방향성 자체가 흐릿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스케일은 더 커졌고 공룡은 더 거대해졌지만, 이상하게도 경외감은 줄어들었습니다. 관객은 공룡의 압도적인 크기보다 이야기의 빈 공간을 먼저 보게 됩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무엇보다 원작이 왜 수십 년 동안 사랑받아 왔는지부터 다시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공룡은 단순한 액션 소품이 아니라 인간이 결코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본질을 되찾을 때 비로소 이 시리즈도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언젠가 극장을 나오며 실망 대신 설렘을 안고 돌아올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