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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비주얼, 캐릭터, 정체성)

by flowerpiggy 2026. 5. 23.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이 시리즈가 다시 저를 설레게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비주얼리스트로 정평 난 감독에 쟁쟁한 각본가 조합, 거기다 스칼렛 요한슨까지 합류했다는 소식에 기대를 꽤 키웠거든요. 극장을 나오면서 그 기대가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영화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비주얼은 살아있지만, 연출의 한계도 뚜렷했습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는데, 거대한 공룡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장면만큼은 확실히 돈값을 했습니다. 가렛 에드워즈 감독 특유의 스케일 연출, 즉 인간 시점에서 생명체의 압도적 크기를 극대화하는 방식은 여전히 현대 블록버스터 감독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입니다. 케찰코아틀루스 시퀀스 후반부에서 한 캐릭터가 잡아먹히는 장면은 솔직히 이번 영화에서 가장 인상에 남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연출 방식 자체를 뜯어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점프 스케어(jump scare)는 화면 밖에서 갑작스러운 자극으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기법인데, 이 감독은 그 대신 타겟 캐릭터를 화면 중앙에 두고 제3자 시점으로 위협을 지켜보게 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의도는 좋았습니다. 문제는 그 방식이 빛을 발하려면 캐릭터에 대한 감정 이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위협받는 인물에게 전혀 감정이 실리지 않으니, 아무리 연출이 정교해도 긴장감이 쌓이지 않았습니다.

블록버스터 흥행의 지표 중 하나로 활용되는 CinemaScore(시네마스코어)는 개봉 당일 관객 반응을 A~F로 평가하는 미국의 영화 평점 시스템입니다. 시리즈 전작들이 대체로 B+ 이상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관객 반응의 온도 차이를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캐릭터 설계 실패가 불러온 몰입 붕괴

이 영화에서 저를 가장 피곤하게 만든 건 공룡이 아니라 인간이었습니다. 주인공 조라 팀과 별개로 등장하는 가족 파티, 그러니까 아버지 한 명이 모사우루스가 서식하는 해협을 소형 요트로 횡단하겠다며 딸들과 딸의 남자친구까지 데리고 바다로 나선 그 설정부터 이미 감정적으로 이들을 응원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인물이 내면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보통 관객은 초반에 인물의 결점이나 욕망을 확인하고, 그 인물이 위기를 통해 변화하는 흐름에서 감정적 만족을 얻습니다. 그런데 이 가족 파티는 캐릭터 아크 자체가 희미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 살아남습니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프로태그니스트 쉴드(protagonist shield), 즉 주인공이나 주요 인물 주변에 묘하게 위협이 빗나가는 서사 장치가 너무 노골적으로 작동한다는 겁니다. 이 패턴이 반복되면 관객은 공룡을 더 이상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이야기의 긴장감이 바닥을 치게 됩니다. 제가 관람하면서 실제로 느꼈던 감정이 그것이었습니다. "제발 한 명만 잡아먹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영화는 이미 지고 들어간 겁니다.

이번 작품에서 등장하는 혼종 공룡 디렉스도 존재 이유가 불분명합니다. 시리즈에서 혼종 공룡은 유전자 조작의 오만함이라는 주제를 상징하는 장치로 기능해왔습니다. 인도미누스 렉스는 열 감지 회피, 위장 능력 등 구체적인 사기 패시브가 있었고, 인도미누스 랩터는 무리를 지휘하는 타게팅 능력이 설정을 뒷받침했습니다. 반면 디렉스는 그냥 더 크고 더 이상하게 생긴 것 이외에 서사적 기능이 모호합니다.

이번 영화에서 드러난 캐릭터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가족 파티의 행동 동기가 납득되지 않아 초반부터 감정 이입 실패
  • 캐릭터 아크 없이 위기를 겪어도 인물이 변화하지 않음
  • 프로태그니스트 쉴드가 과도하게 작동해 공룡의 위협이 희화화
  • 디렉스의 설정이 시리즈의 주제 의식과 연결되지 않음

정체성 혼란이 시리즈의 진짜 문제입니다

제가 이 시리즈에 계속 돌아오는 이유는 사실 단순합니다.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원작 쥬라기 공원이 제 인생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 영화는 공룡 영화이기 이전에, 인간의 과학적 오만과 통제 불가능한 자연에 대한 SF 스릴러였습니다. 공룡은 그 주제를 가장 강렬하게 구현한 매개였고, 그래서 장면 하나하나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그런데 최근 쥬라기 월드 시리즈는 소프트 리부트(soft reboot)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소프트 리부트란 기존 세계관과 설정을 일부 유지하면서 새로운 이야기와 인물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하드 리부트처럼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이 방식은 기존 팬층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 관객을 유입하려는 전략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오히려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감독 가렛 에드워즈 본인이 인터뷰에서 처음 받은 시나리오에 쥬라기 월드라는 타이틀이 없었다고 언급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 역시 브랜드에 얽매이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공룡 이야기를 원했다고 전해졌는데, 그렇다면 차라리 하드 리부트로 가는 편이 더 솔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소프트 리부트라는 어중간한 선택이 기대값은 올려놓고 결과물의 정체성은 흐리게 만든 셈입니다.

영화 산업 전반에서 리부트와 속편이 남발되는 현상에 대해 할리우드 저널 버라이어티(Variety)는 "IP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오리지널 서사에 대한 관객의 갈증도 함께 높아진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이 영화가 받은 반응은 그 분석을 정확히 증명하는 사례로 읽힙니다.

결국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비주얼이라는 강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비주얼을 받쳐줄 캐릭터와 서사 구조가 무너지면서 블록버스터로서의 본령을 잃어버린 영화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악명 높은 전작 도미니언보다도 더 아쉬웠습니다. 이야기의 방향성이 없는 채로 스케일만 키우면, 결국 관객은 공룡의 거대함이 아니라 서사의 공허함을 더 크게 느끼게 됩니다.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원작이 왜 오랫동안 사랑받았는지부터 다시 짚어주길 바랍니다. 공룡을 다시 경외의 대상으로 돌려놓는 것, 그게 이 시리즈에 지금 가장 필요한 일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rfIFxrM3g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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