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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 혈청 없이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든 인물이 마침내 자신만의 무대를 가졌습니다. 솔직히 개봉 전까지는 "샘 윌슨이 스티브 로저스의 자리를 얼마나 채울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습니다. 아마 저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MCU를 따라온 팬들 상당수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겁니다. 캡틴 아메리카라는 이름은 단순한 히어로의 코드네임이 아니라, MCU 전체를 관통해 온 상징에 가까웠으니까요. 그래서 극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무의식적으로 샘을 새로운 캡틴이 아니라 '스티브의 후임' 정도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에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 영화는 누군가의 빈자리를 대신 채우는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캡틴이 자신의 방식으로 탄생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애초에 "스티브를 얼마나 대신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자체가 틀렸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작품은 대체가 아니라 계승의 이야기였습니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월드, 혈청 없는 캡틴 샘 윌슨의 정체성 확립
MCU(Marvel Cinematic Universe)에서 캡틴 아메리카라는 타이틀이 갖는 무게는 단순한 히어로 명칭 그 이상입니다. 여기서 MCU란 마블 스튜디오가 2008년부터 구축해 온 공유 세계관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뜻하며, 이 안에서 캡틴 아메리카는 어벤져스의 도덕적 기준점 역할을 해왔습니다. 스티브 로저스가 슈퍼 솔저 혈청을 통해 신체적 한계를 초월한 존재였다면, 샘 윌슨은 그 혈청 없이 오직 비브라늄 슈트와 팔콘 윙, 그리고 자신의 판단력과 끈기만으로 싸우는 인물입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가장 인상 깊게 느꼈던 건 영화가 이 차이를 결코 열등함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관객 입장에서는 무의식적으로 비교하게 됩니다. 스티브 로저스는 맨몸으로 헬기를 붙잡고, 초인적인 힘으로 전장을 돌파하던 인물이었으니까요. 반면 샘은 인간입니다. 지치고, 다치고, 실패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오히려 그 인간적인 한계를 정면으로 드러내면서도 그것을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전환합니다. 위기의 순간마다 초인적인 힘이 아니라 책임감과 신념으로 움직이는 샘의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특히 호아키가 샘에게 동경을 드러내며 "죽기 금지"를 외치고, 자신도 언젠가 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묘하게 가슴이 울렸습니다. 거대한 액션 장면보다 오히려 이런 순간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장면은 단순히 후배가 선배를 존경하는 장면이 아니라, 캡틴 아메리카라는 상징이 어떻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그 장면을 보며 문득 납득하게 되었습니다. 캡틴은 초인적인 힘의 상징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서사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캐릭터 교체 때문이 아닙니다. 캐릭터 계승(Character Legacy)이라는 개념, 즉 전임자의 가치를 물리적으로 이어받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자신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방식이 MCU의 다음 페이즈를 어떻게 끌고 갈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샘 윌슨은 윈터 솔져 시절부터 10년 넘게 MCU와 함께한 인물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조력자와 팀원 역할에 머물렀던 그가 이번 작품에서 마침내 중심에 서게 되는데, 영화는 그 과정을 상당히 정성스럽게 그려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이제야 진짜 캡틴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름으로 인정받는 통과의례를 지켜본 기분이었습니다.
로스의 레드 헐크 변신, 팬서비스가 아닌 감정적 서사
이번 영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캐릭터는 뜻밖에도 새뮤얼 로스입니다. 그는 대통령직까지 오른 인물로 17년 전부터 리더(Samuel Sterns)에게 처방받은 감마선(Gamma Radiation)이 포함된 약을 복용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감마선이란 전자기파 스펙트럼 중 가장 에너지가 높은 방사선으로, 마블 세계관에서는 헐크를 비롯한 감마 변종 존재들의 변신 원인으로 설정된 핵심 요소입니다. 로스는 자신도 모르게 수십 년간 이 물질을 체내에 축적해 왔고, 극도의 분노 상황에서 레드 헐크로 변신하게 됩니다.
개봉 전부터 많은 팬들이 기대했던 장면은 단연 레드 헐크의 등장일 것입니다. 저 역시 예고편을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놀랍게도 기억에 남는 건 변신 자체보다 그 변신에 이르게 된 감정의 과정이었습니다. 단순히 "드디어 레드 헐크가 나왔다"는 팬서비스로 소비하기에는 로스라는 인물이 가진 감정선이 생각보다 훨씬 깊었습니다.
그는 권력의 정점에 선 인물입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정작 그가 진심으로 원했던 것은 딸 베티와의 관계 회복이었습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권력을 손에 쥐고도 가장 가까운 가족과는 멀어진 채 살아온 인물이라는 설정이 꽤 씁쓸하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에도 결국 그의 내면에 남아 있는 것은 권력욕이 아니라 후회와 외로움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레드 헐크의 분노를 잠재운 존재 역시 무기가 아니라 베티였습니다. 이 장면은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강렬했던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거대한 괴물이 되어버린 아버지가 결국 딸의 존재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은 단순한 액션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넘어선 감정적 여운을 남겼습니다. 헐크 시리즈가 꾸준히 이야기해 왔던 "분노의 본질은 상실과 고립"이라는 테마가 다시 한번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로스를 완전한 악인으로 미워하기 어려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후회하는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레프트(The Raft)에 수감되고 대통령직까지 내려놓게 되지만, 마지막에 그의 이름이 걸린 오자키 로스 협정이 성사되는 장면에서는 묘한 아이러니가 느껴졌습니다. 결국 사람은 권력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흔적을 남긴다는 메시지처럼 보였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꽤 인상적인 마무리였습니다.
아다만티움, MCU가 꺼낸 세 번째 금속의 의미
이번 영화에서 가장 큰 세계관 확장 떡밥은 단연 아다만티움(Adamantium)의 본격 등장입니다. 아다만티움이란 마블 세계관의 3대 금속 중 하나로, 외계 금속 우르(Uru), 충격 흡수 및 반사 성질의 비브라늄(Vibranium)과 함께 "파괴 불가능한 합금"으로 분류됩니다. 그 중 아다만티움은 유일하게 자체적인 파괴 저항성을 지닌 금속으로, 우리가 잘 아는 엑스맨의 울버린(Wolverine) 골격에 이식된 소재이기도 합니다.
극장에서 이 설정이 본격적으로 언급되는 순간, 오래된 마블 팬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순간적으로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다만티움은 오랫동안 MCU 팬들이 기다려온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판권 문제 때문에 언급조차 어려웠던 소재가 이제는 영화 속 핵심 자원으로 등장하는 모습을 보니, MCU가 정말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실감이 났습니다.
셀레스티얼 섬(Celestial Island), 즉 이터널스에서 등장했던 티아무트의 거대한 흔적이 새로운 자원 전쟁의 무대로 바뀌는 설정도 흥미로웠습니다. 단순히 과거 작품의 설정을 재활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특히 이 장면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제 엑스맨의 시대가 정말 시작되는 건가?"였습니다.
아다만티움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금속이 등장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비브라늄이 와칸다를 중심으로 한 정치 서사를 이끌었다면, 아다만티움은 앞으로 훨씬 거대한 충돌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가와 국가, 집단과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며 MCU 전체를 흔드는 자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많은 팬들이 기다려온 엑스맨과의 연결이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인커전(Incursion)이라는 개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인커전이란 두 개의 평행 우주가 충돌하며 하나 또는 둘 다 소멸하는 현상을 뜻하며, 마블 코믹스에서는 어벤져스 대규모 서사의 핵심 위기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쿠키 영상에서 리더가 "이 세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 장면을 보는 순간, 극장 안 여기저기서 작은 탄성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물론 이것을 곧바로 시크릿 워즈의 구체적인 예고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MCU는 최근 몇 년 동안 다양한 떡밥을 던져왔고, 그 회수 속도 역시 예상보다 길었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장면을 거대한 폭풍이 오기 전의 전조 정도로 받아들였습니다. 당장 무언가가 터지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이야기를 위한 첫 번째 신호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어쩌면 이번 영화의 진짜 역할은 거대한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준비하는 데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월드는 완전히 폭발적인 한 방을 노린 작품은 아닙니다. 서사가 다소 과밀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 몇몇 전개는 조금 더 매끄럽게 다듬어질 필요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반드시 성공해야 했던 과제, 즉 샘 윌슨을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로 설득하는 일만큼은 기대 이상으로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길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제 MCU가 진짜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구나"였습니다. 아다만티움과 인커전이라는 거대한 세계관 포석이 깔렸고, 샘 윌슨이라는 새로운 리더도 무대 중앙에 섰습니다. 어벤져스 5편과 6편이 개봉한 뒤에야 이 영화의 진짜 가치가 평가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하나입니다.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월드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었고, 저는 그 첫 페이지를 생각보다 꽤 흥미롭게 넘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