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처음 극장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됐을 때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게 공포 영화인지, SF 영화인지, 아니면 실험영화에 가까운 작품인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거칠게 일렁이는 화면과 의도적으로 노이즈를 입힌 영상, 속삭이는 듯한 나레이션, 귓가를 불편하게 파고드는 음향은 관객을 편안하게 맞이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익숙한 문법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시작 몇 분 만에 알 수 있었고, 솔직히 초반에는 '끝까지 집중해서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2~3분 정도 지나자 완전히 다른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붉게 물든 황폐한 미래의 풍경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순간, 저는 이 영화가 단순히 난해한 독립영화가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를 끝까지 밀어붙..
속편이 나온다는 소식만 들려도 자연스럽게 1편을 다시 찾아보게 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역시 저에게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개봉 당시 천재적인 회계 실력과 뛰어난 전투 능력을 동시에 가진 크리스천 울프라는 캐릭터는 꽤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숫자를 계산하듯 사건을 분석하고,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라는 설정 자체가 워낙 독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편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이미 완성도가 높았던 캐릭터를 어떻게 다시 끌고 갈지 궁금했고, 혹시 전형적인 액션 속편으로 변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막상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의외였습니다. '이 영화는 1편과 같은 방식으로 평가하면 안 되겠구나.' 처음에는 전작의 연장선에..
솔직히 처음에는 저도 이 영화를 단순한 액션 스릴러 정도로 예상했습니다. '천재 회계사가 사실은 최강의 킬러다'라는 한 줄 설정만 들어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장르 영화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총격전과 반전 몇 개, 그리고 통쾌한 액션을 기대하며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났을 때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총을 겨누는 장면이 아니라 숫자를 바라보는 크리스천 울프의 눈빛이었습니다. 벤 애플렉이 연기한 크리스천은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데도 이상할 만큼 복잡한 감정을 전달합니다. 말수는 적고 표정도 거의 변하지 않지만, 장부 속 작은 오류 하나를 끝까지 추적하는 모습에서는 집착이라기보다 생존 본능이 느껴졌습니다. 단순히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나홍진 감독의 신작이라는 말만 들었을 때 저는 자연스럽게 '이번에도 수많은 해석을 낳는 영화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을 보고 극장을 나왔을 때 며칠 동안 결말을 곱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시 인간의 본성과 종교, 선과 악을 은유적으로 풀어낼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것은 철학적인 대사보다 총성과 폭발음,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생존의 현장이었습니다. 초반부터 숨 돌릴 틈 없이 몰아치는 액션과 압도적인 스케일은 '이게 정말 나홍진 감독 영화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당황했습니다. 감독에게 기대했던 방향과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
혜성 충돌 확률이 0.1%라도 존재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영화 《그린랜드》를 처음 재생했을 때만 해도 저는 여느 할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처럼 거대한 폭발과 무너지는 도시를 보여주는 작품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고편 역시 그런 기대를 하게 만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갈 때까지 영화를 보고 난 뒤 제 머릿속에 가장 오래 남은 것은 화려한 CG도, 거대한 혜성도 아니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가족의 눈빛과 살아남기 위해 흔들리는 사람들의 표정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장면보다 그 하늘 아래에서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훨씬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재난 영화를 보고 이렇게 오랫동안 마음이 무거웠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영화 그린랜드: 재난 ..
혜성 충돌로 지구의 75%가 파괴된 지 5년. 이 한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묘한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전편이 벙커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의 숨 막히는 생존기를 그렸다면, 속편은 당연히 그 이후의 세상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겠다는 의미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과연 인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았을까?', '문명은 얼마나 무너졌고,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희망을 이어갈까?'라는 궁금증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기대를 안고 극장을 나섰지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제 마음에는 만족감과 아쉬움이 동시에 남았습니다. 분명 흥미로운 설정과 감동적인 순간도 있었지만, 그만큼 쉽게 납득되지 않는 전개도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단순히 "재미있다, 없다"로 평가하기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