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자가 자기 제자에게 진다면, 그것은 과연 비극일까요. 아니면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이 완성되는 순간일까요. 영화 〈승부〉를 보고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처음에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스포츠 영화 정도로 생각하고 들어갔습니다. 치열한 승부와 짜릿한 역전, 그리고 감동적인 성공담을 예상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난 뒤 남은 감정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 작품은 승리의 쾌감보다 패배의 무게를, 경쟁의 긴장감보다 인간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영화였습니다. 바둑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바둑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한 사람이 자신의 전성기를 지나며 마주하게 되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였고, 그래서 더욱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영화 승부: 응창기배와 한 시대..
열심히 일하면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까? 저 역시 한때는 성실함이 결국 사람을 지켜준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경력을 쌓고, 묵묵히 책임을 다하면 최소한 삶의 기반만큼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 없다를 보고 난 뒤, 그 믿음이 얼마나 허약한 전제 위에 세워져 있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해고를 당한 한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불안과 공포를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상영 내내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이 분명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웃음이 끝날 때마다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습니다. 블랙 코미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너무도 현실적인 절망이 담겨 있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