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보면서 "어떻게 그걸 속아요?"라고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도 솔직히 그랬습니다. 뉴스에서 피해 사례를 접할 때마다 어딘가 남 일처럼 느껴졌고, 화면 너머의 피해자들에게 무심하게 "조금만 더 의심했으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영화 《시민덕희》를 보고 나서 그 질문 자체가 얼마나 오만한 시선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범죄 오락영화 한 편을 가볍게 즐길 생각으로 극장에 들어갔다가, 예상치 못한 죄책감과 공감, 그리고 씁쓸한 여운을 안고 나오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쉽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단순히 범인을 잡는 통쾌한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영화가 피해자를 바라보는 방식이 너무나 인간적이었기 때문입..
여름마다 극장을 찾아갈 영화를 고를 때, 저는 보통 "웃기거나 무섭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됩니다. 무더위에 지친 날이면 머리를 비우고 실컷 웃을 수 있는 코미디를 찾고, 반대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긴장감을 느끼고 싶을 때는 공포영화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두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한 영화를 만났습니다. 바로 영화 핸섬가이즈입니다. 사실 개봉 전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그냥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영화"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다른 정보도 찾아보지 않은 채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몇 번 웃고 끝나는 코미디가 아니라, 예상보다 훨씬 치밀하게 설계된 이야기였고, 웃음 ..
솔직히 저는 베테랑2를 보기 전까지, 이 영화가 1편의 연장선이라고 너무 쉽게 단정했습니다. 9년이라는 시간, 같은 감독, 같은 주연. 그 사실만으로도 머릿속에는 이미 익숙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더 강력한 악당이 등장하고, 더 화끈한 액션이 이어지며, 마지막에는 통쾌한 한 방이 터지는 영화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극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저는 그런 기대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저는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분명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었고, 오히려 상당히 몰입해서 봤는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복합적인 감정이 남아 있었습니다. 기대했던 것과 실제로 본 것이 미묘하게 달랐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던지려는 질문은 분명 이전보다..
세계 최강자가 자기 제자에게 진다면, 그것은 과연 비극일까요. 아니면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이 완성되는 순간일까요. 영화 〈승부〉를 보고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처음에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스포츠 영화 정도로 생각하고 들어갔습니다. 치열한 승부와 짜릿한 역전, 그리고 감동적인 성공담을 예상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난 뒤 남은 감정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 작품은 승리의 쾌감보다 패배의 무게를, 경쟁의 긴장감보다 인간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영화였습니다. 바둑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바둑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한 사람이 자신의 전성기를 지나며 마주하게 되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였고, 그래서 더욱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영화 승부: 응창기배와 한 시대..
열심히 일하면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까? 저 역시 한때는 성실함이 결국 사람을 지켜준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경력을 쌓고, 묵묵히 책임을 다하면 최소한 삶의 기반만큼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 없다를 보고 난 뒤, 그 믿음이 얼마나 허약한 전제 위에 세워져 있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해고를 당한 한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불안과 공포를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상영 내내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이 분명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웃음이 끝날 때마다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습니다. 블랙 코미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너무도 현실적인 절망이 담겨 있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