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의 신작이라는 말만 들었을 때 저는 자연스럽게 '이번에도 수많은 해석을 낳는 영화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을 보고 극장을 나왔을 때 며칠 동안 결말을 곱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시 인간의 본성과 종교, 선과 악을 은유적으로 풀어낼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것은 철학적인 대사보다 총성과 폭발음,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생존의 현장이었습니다. 초반부터 숨 돌릴 틈 없이 몰아치는 액션과 압도적인 스케일은 '이게 정말 나홍진 감독 영화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당황했습니다. 감독에게 기대했던 방향과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
제목만 보고 첩보 액션을 기대했다가 전혀 다른 영화를 만난 적 있으신가요? 저는 오늘 딱 그 경험을 했습니다. 브라질 영화 시크릿 에이전트. 상영 시간이 무려 161분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래도 첩보 영화라면 금방 지나가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에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멍하니 스크린만 바라봤고, 영화관 불이 켜진 뒤에도 방금 무엇을 본 것인지 머릿속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재미있었다, 지루했다처럼 단순한 감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했고, 끝난 뒤에는 그 긴장감이 질문으로 바뀌어 오래 남았습니다. 영화 시크릿 에이전트: 슬로번의 함정, 그리고 살아남는 법 솔직히 이건 예상 밖..
탈북민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긴장감 넘치는 탈출 장면부터 떠오릅니다. 국경을 넘는 순간의 공포, 목숨을 건 추격, 자유를 향한 극적인 여정. 저 역시 《하나 코리아》를 보기 전까지는 그런 전개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제 머릿속에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탈출도, 추격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영화가 제게 던진 질문은 훨씬 조용하면서도 묵직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것'과 '대한민국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은 같은 의미일까. 법적으로 국적을 얻는 순간 삶이 새롭게 시작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제 편견을 이 영화는 아주 담담하게 깨뜨렸습니다. 자유를 얻는 것과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영화를 보는 내내 실감했고, 극장을 나와서도 그 생각..
혜성 충돌 확률이 0.1%라도 존재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영화 《그린랜드》를 처음 재생했을 때만 해도 저는 여느 할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처럼 거대한 폭발과 무너지는 도시를 보여주는 작품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고편 역시 그런 기대를 하게 만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갈 때까지 영화를 보고 난 뒤 제 머릿속에 가장 오래 남은 것은 화려한 CG도, 거대한 혜성도 아니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가족의 눈빛과 살아남기 위해 흔들리는 사람들의 표정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장면보다 그 하늘 아래에서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훨씬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재난 영화를 보고 이렇게 오랫동안 마음이 무거웠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영화 그린랜드: 재난 ..
혜성 충돌로 지구의 75%가 파괴된 지 5년. 이 한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묘한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전편이 벙커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의 숨 막히는 생존기를 그렸다면, 속편은 당연히 그 이후의 세상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겠다는 의미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과연 인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았을까?', '문명은 얼마나 무너졌고,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희망을 이어갈까?'라는 궁금증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기대를 안고 극장을 나섰지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제 마음에는 만족감과 아쉬움이 동시에 남았습니다. 분명 흥미로운 설정과 감동적인 순간도 있었지만, 그만큼 쉽게 납득되지 않는 전개도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단순히 "재미있다, 없다"로 평가하기보다 ..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 영화를 완전히 잘못 예측했습니다. 포스터에서 탁구채를 든 티모시 샬라메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아, 재능 있는 선수가 역경을 딛고 정상에 오르는 스포츠 성장 영화겠구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경기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마지막에는 감동적인 우승 장면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으며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고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제 예상은 보기 좋게 무너졌습니다. 스크린 속에서 펼쳐진 것은 승리의 드라마가 아니라 욕망의 드라마였습니다. 마티 슈프림은 탁구를 소재로 삼았을 뿐, 결국 인간이 성공을 향해 달려갈 때 어디까지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욕망이 주변 사람들까지 어떻게 집어삼키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가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를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