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의 는 호메로스의 고전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바탕으로 만든 2026년 영화다. 맷 데이먼이 오디세우스, 앤 해서웨이가 페넬로페, 톰 홀랜드가 텔레마코스, 로버트 패틴슨이 안티노우스를 연기했다. 젠데이아는 아테나 역으로 등장한다. 영화는 약 172분 동안 트로이 전쟁을 끝낸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의 여정을 따라간다. 동시에 그가 없는 동안 이타카에서 흘러간 시간도 함께 보여준다. 놀란은 이야기를 단순한 시간 순서로 이어 붙이지 않는다.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 끼어들고, 이미 지나간 장면이 뒤늦게 다른 의미를 갖는다. 기억을 하나씩 되찾는 듯한 방식이다. 화면의 규모 역시 놀란 답다. 는 전편을 IMAX 70mm 카메라로 촬영한 최초의 장편영화로 소개되고 있다. 거대한 바다와 ..
스파이더맨은 혼자 뉴욕을 날아간다. 겨울이다. 빌딩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고,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바쁘게 움직인다. 그 위를 스파이더맨 한 명이 거미줄을 쏘며 건물 사이를 지나간다. 그런데 이상하다. 저렇게 자유롭게 움직이는 사람이 왜 이렇게 외로워 보일까. 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이 생각이 먼저 든다.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한 화면에 등장했던 순간도 짜릿했다. 과거의 빌런들이 다시 나타나는 장면도 반가웠다. 개봉 당시 극장에서 토비 맥과이어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객석에서 탄성이 터졌던 기억도 선명하다. 나 역시 그 순간 피식 웃었다. 어린 시절 보았던 스파이더맨이 시간이 훌쩍 지난 뒤 다시 내 앞에 나타난 느낌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에는 전혀 다른 장면이 머릿속에 남았..
3시간짜리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왔다. 이상하게도 가장 강렬했던 건 폭발 장면이 아니었다. 엄청난 소리와 빛이 화면을 가득 채우던 순간보다, 그 뒤에 남은 한 사람의 얼굴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말도 거의 없고 움직임도 크지 않은데 이상하게 눈을 뗄 수 없었던 얼굴. 집에 돌아와서도 그 표정이 자꾸 떠올랐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는 원자폭탄을 만든 과학자에 관한 영화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폭탄의 위력보다 한 가지 질문이 더 무겁게 남는다. 인류를 발전시킨 지식이 인류를 파괴할 수도 있다면, 그 지식을 만든 사람에게 책임이 있을까. 오펜하이머는 괴물 같은 무기를 만들어낸 사람일까. 아니면 시대가 요구한 일을 수행한 과학자였을까. 둘 중 하나를 고르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영화는 그 둘 사이에서..
어릴 때는 이상한 일이 있어도 이상한 줄 모를 때가 많습니다. 학교에서 정해진 자리에 앉고,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하고,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돌아옵니다. 매일 반복되는 풍경이 너무 익숙해서 그 안에 어떤 규칙이 숨어 있는지 굳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구는 이곳에 들어갈 수 있고 누구는 안 된다는 것. 누구와 친하게 지내면 안 된다는 것. 어떤 사람은 피부색이나 가족의 배경 때문에 다른 대우를 받는다는 것. 그런 사실을 처음 알아차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1999년 배리 레빈슨 감독이 만든 는 1954년 볼티모어에서 살아가는 유대인 소년 벤 커츠먼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레빈슨 감독이 자신의 고향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만든 네 번째 작품이기도 합니다. , , 으로 이어진 볼티모어 연작의 마지막 작품인 셈입니..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7’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알고 있던 나이였다. 단종이 열일곱 살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역사책에서 여러 번 봤고, 단종과 세조를 둘러싼 사건도 익숙하게 배웠다. 그런데 스크린으로 다시 마주한 열일곱은 이상하게 낯설었다. 열일곱 살이면 아직 너무 어리다. 친구들과 별것 아닌 일로 웃다가도 금세 서운해지고, 좋아하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마음이 들뜨기도 하는 나이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하면서도 아직 시간이 아주 많다고 믿을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그 나이에 한 나라의 왕이었던 소년은 왕좌에서 끌려 내려왔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홍위가 청령포로 유배될 당시에는 16세였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약 4개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