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 영화를 보러 가기 전까지 "놀란이니까 무조건 10점"이라는 기대를 반쯤 품고 있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이름은 이제 하나의 장르처럼 느껴질 정도니까요.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만으로도 몇 달 전부터 기다렸고, 예고편을 반복해서 보며 머릿속으로 이미 걸작을 완성해 놓고 있었습니다. 극장 불이 꺼지고 첫 장면이 시작될 때만 해도 '이번에도 역사에 남을 작품을 보겠구나'라는 확신에 가까운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관을 나오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의외로 담담했습니다. "이건 7점짜리 놀란이다." 실망했다고 말하기에는 분명 좋았고, 극찬하기에는 어딘가 아쉬웠습니다. 칭찬과 비판 사이를 계속 오가는 묘한 감정이 남았습니다. 오히려 그 애매함 때문에 영화가 더 오래 머릿속..
제목만 보고 첩보 액션을 기대했다가 전혀 다른 영화를 만난 적 있으신가요? 저는 오늘 딱 그 경험을 했습니다. 브라질 영화 시크릿 에이전트. 상영 시간이 무려 161분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래도 첩보 영화라면 금방 지나가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에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멍하니 스크린만 바라봤고, 영화관 불이 켜진 뒤에도 방금 무엇을 본 것인지 머릿속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재미있었다, 지루했다처럼 단순한 감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했고, 끝난 뒤에는 그 긴장감이 질문으로 바뀌어 오래 남았습니다. 영화 시크릿 에이전트: 슬로번의 함정, 그리고 살아남는 법 솔직히 이건 예상 밖..
극장에서 나오면서 이상하게도 한동안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보통 정말 좋았던 영화라면 "재밌었다", "잘 만들었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기 마련인데, 어떤 작품은 그런 감탄보다 먼저 "조금만 더 다듬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앞섭니다. 저에게 영화 〈눈동자〉는 바로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분명히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긴장하며 몰입할 수 있는 장면들이 곳곳에 있었고, 배우들의 연기 역시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 마음속에는 만족감보다 아쉬움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좋은 재료와 훌륭한 배우들을 가지고도 마지막 한 걸음을 채우지 못한 듯한 느낌. 그래서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영화 눈동..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에 그냥 "맛있는 음식 나오는 가벼운 영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주말 저녁, 특별히 볼 게 없어서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제목도 익숙했고, 음식 영화라면 적당히 편안하게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 저는 바로 다음 작품을 틀지 못했습니다. TV를 끄고 한참 동안 소파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유는 의외였습니다. 이 영화는 음식에 관한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정확히는 음식이라는 소재를 빌려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어른이 다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에 가까웠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는 좋아서 시작했던 일들을 어느 순간 의무처럼 반복하게 됩니다. 열정은 사라지고 성..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베놈 시리즈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은 정말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1편이 개봉했을 때부터 꾸준히 챙겨 보며 에디 브록과 베놈 특유의 티격태격하는 관계를 꽤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귀찮아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는 그 묘한 관계성은, 일반적인 슈퍼히어로 영화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완결편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기대감이 꽤 컸습니다. '과연 이 둘의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할까?', '마지막에는 어떤 감정을 남길까?' 하는 생각으로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불이 켜진 뒤에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분노가 치밀거나 실망감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영웅은 처음부터 영웅이었을까요? 저는 극장에서 나오고도 한동안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했습니다. 보통 역사영화를 보고 나면 사건이나 명장면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인데, 영화 하얼빈은 조금 달랐습니다. 머릿속에 남은 것은 총성과 함성보다도 한 인간의 흔들리는 눈빛과 무거운 침묵이었습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익숙하게 배웠던 안중근 의사는 늘 굳건하고 의연한 인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신화적인 이미지 뒤에 존재했을 법한 인간 안중근을 응시합니다. 동지들을 잃은 죄책감,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의심, 그리고 끝내 감당해야 했던 책임의 무게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위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개봉 직후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며 많은 관심을 받았던 ..